코로나 시대가 끝나며 가장 반가운 건 어린이집 행사가 많아졌다는 것. 그 중 가장 반가운 행사는 단연코 운동회다. 우리 아이들은 인원이 적은 가정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어 근처 7개의 가정 어린이집과 연합해 운동회를 개최하였다. 첫 아이를 낳은 해, 코로나가 발발했으니 학부모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한 운동회라 감회가 새로웠다. 팀은 추억의 청백팀으로 나뉘었는데, 우리는 백팀이 되었다. 어린 시절, 희한하게도 내가 속한 백팀이 늘 지곤 했다. “아~ 이번에도 청팀한테 지면 안 되는데~” 이게 뭐라고 벌써부터 이렇게 진심이게 되는지. 흰색 티셔츠 위에 내 이름표 대신 아이들의 가족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는 것만 달랐지, 십 수 년 전 운동회나 아이들의 운동회나 그때나 지금이나 설레는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연합 운동회라 그런지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넓은 체육관이 청팀과 백팀으로 가득했다. 몇 년 만의 운동회라 그런지 한껏 들뜬 선생님들의 모습에 덩달아 우리도 기대감에 부풀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는 처음인 첫째, 둘째 모두 어안이 벙벙해져 사방을 둘러보며 이리저리 구경하다 낯선 환경이 어색한지 조금 쭈뼛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늘 하원하고 만나는 친구들, 엄마들을 운동회에서 보니 더 반가웠다. 자주 보지 못하는 아빠들까지 다 함께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온 간식을 나눠 먹으며 순서를 기다렸다.

첫 번째 순서는 운동회의 꽃, 달리기! 모든 아이들이 줄을 서서 달리기 시합을 했다. 만 0세부터 2세까지 자그마한 아이들이 옹기종기 달리는 모습은 정말이지 귀여웠다. 만 2세로 제일 큰 형인 첫째는 혼자서도 잘 달렸다. 엄청 잘 달리는 얼굴로 다소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무려 2등이나 했다. 결승선 통과하는 건 가르치지 않아도 어찌 그리 다 아는지. 결승선 앞에서 딱 멈추더니 점프를 하며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다음 차례는 우리 둘째. 형아처럼 스스로 잘 뛸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멋 모르고 막 달리기엔 뭘 좀 알아버린 애매한 만 1세. 그래도 형아랑 같이 뛰면 뛸 수 있겠지 싶어 나란히 세웠다. 그런데 이게 웬걸. 형아가 저만 혼자 두고 열심히 앞서 나가버리는 게 아닌가. 당황한 얼굴로 형아를 따라가던 둘째는 격차가 너무 벌어져 버리자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엄마 손을 잡고 여전히 우는 채로, 하지만 다리는 빠르게 달려 결승선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어찌나 우습던지.

이제 엄마, 아빠 차례가 왔다. 나 참, 이게 뭐라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결승선에 있는 저 고무장갑 꼭 가지고 싶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면서 눈에 불이 켜지는 지. 학창 시절 이후로 이렇게 전속력으로 달려본 건 처음이었다. 전속력으로 달린 게 이 속도라니(···) 생각보다 느려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_^ 옆 엄마와의 치열한 몸싸움(?) 끝에 고무장갑은 마침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그 다음은 아빠 차례. 별 감흥 없어 보이던 아빠도 출발선에 서자마자 승부욕이 불타오르는 듯 했다. 아쉽게도 상품은 타지 못했지만, 놀릴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운동회의 백미로는 베일에 싸인 아빠들만의 릴레이 게임이 있었다.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남편이 아빠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무려 치마를 입고 달리는 거였다. 나풀거리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울룩불룩한 다리를 내놓고 앞 구르기까지 해야 한단다. 아빠를 민망하게 만들 작정임이 틀림없는 게임이었다. 난감해 하던 남편은 승부를 위해 기꺼이 바지를 벗고 치마를 입고 전투적으로 달려나갔다. 큼지막한 덩치로 어찌나 날쌔던지. 수많은 사람들에게 팬티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마도 스피드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당황스러움을 뒤로 한 채, 유쾌하게 게임에 임해준 남편 덕분에 모두가 즐거웠다.

첫 운동회라 특별히 아이들 이모인 여동생도 참석해주었는데, 덕분에 사진과 영상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고 아이들 케어도 훨씬 수월했다. 100km 라이딩 마라톤도 거뜬한 처제와 덩치가 커서 듬직한 형부, 두 사람이 혼신의 힘을 다해 줄다리기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유쾌했다. 아직 자녀가 없는 내 동생은 어린이집 운동회를 처음으로 경험하곤 제부에게 애들 운동회라고 얕볼 게 아니라며 더 열심히 운동하자고 전하며 열의를 불태웠다. 

코로나가 터졌던 2020년 3월에 태어난 첫째, 그리고 2021년 11월에 태어난 둘째. 코로나 베이비들이 마스크를 벗고 큰 체육관에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운동회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마스크를 끼던 당시에는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조차 어려웠으니 이런 행사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마음 놓고 행사를 할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아이들도 기뻐했지만 사실 어린이집 운동회에서 가장 신이 난 건 어른들이었다. 어른 운동회라고 해도 무색할 정도로 모든 엄마, 아빠들이 운동회에 진심이었다. 막막하고 두려웠던 날들이 지나 함께 응원하고, 소리치고, 달리고, 박수 치는 그 시간들이 더없이 소중했다. 아마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마스크 없이 모두의 미소를 실컷 볼 수 있었던 그 날의 운동회는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 저희 집 경품 추첨 해서 치킨 탔어요… 😇 히히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40개월 1호와 20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