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준아, 엄마처럼 뽀글뽀글하게 머리 파마해 보는 거 어때?”

우리 집 아들들은 아빠를 닮아 옆머리가 잘 뻗치고, 머리카락도 빨리 자란다. 옆머리가 천천히 자라도록 투블럭 컷을 고수하고 있지만, 그래도 매달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잘라줘야 할 정도이다. 자주 가다 보니 어느 순간 첫째는 미용실에 혼자 앉아 영상을 보지 않고도 머리카락을 잘 자를 수 있게 되었고, 심지어 머리를 감는 것도 가능한 날이 왔다. 은근슬쩍 파마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 물으니 흔쾌히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 기회를 놓칠 새라 냉큼 미용실 예약을 했다.

인생 첫 파마에 도전하는 대망의 그날, 첫째는 미용실 가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어린이집에서 점심만 먹으니 엄마가 데리러 온 것도, 동생 없이 둘이서 하는 외출도 좋았던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종알종알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미용실 앞이다. 갑자기 하기 싫다고 울면 어쩌나 내심 긴장이 되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씩씩하게 앉아 커트를 마치고, 머리를 감았다. 하리보 젤리를 먹으며 파마 롤이 말린 자신의 얼굴을 거울을 통해 빤히 쳐다보다가 미용실 원장님의 바쁜 손길을 구경하기도 하고 그러다 이따금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씩 웃어주기까지.

“엄마! 아이스티 맛있당! 근데 엄마! 머리가 따뜻해~”

작은 얼굴에 큰 열처리 모자를 뒤집어쓰고 원장님이 건네주신 아이스티를 홀짝홀짝 마시는 아이가 참 귀여웠다. 다섯 살 평생 미용실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을 게다. 지겨울 법도 한 시간을 의젓하게 기다려주고, 낮잠 없이도 짜증 한 번 부리지 않은 아이가 기특했다. 파마를 마치고 난 첫째를 보니 갑자기 아기에서 어린이로 훌쩍 커버린 것만 같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영락없는 유치원 생이다.

첫째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땐 미용실에 가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악을 쓰며 우는 아이를 단 10분이라도 꼭 붙들고 있는 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된 일이었다. 오죽하면 미용실 가기가 두려워 머리카락을 길러야 하나 고민이 될 정도였다. 

미용실 원장님의 스타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아이가 울어도 멈추지 않고 오히려 더 스피디하게 끝내는 부류와 첫 미용의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기 위해 충분히 시간을 들이는 부류. 우리가 만난 원장님은 후자였다. 아이에게 첫 미용이 무서운 기억으로 남지 않도록 말도 많이 걸어 주시고 바리깡의 진동도 느끼게 해주고 과자도 주시곤 했다. 정말 감사했지만 문제는 시간이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것(···). 이쯤 되니 그냥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더라도 10분 만에 커트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남편과 나는 미용실에서 녹초가 되어갔다.

아이가 자라며 점점 소요시간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1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첫째가 점점 미용실을 덜 무서워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매달 미용실에서의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며 엄마에게도 나름의 요령이 생겼다. 머리카락이 덜 박히는 옷을 입고 간다던가, 아이의 옷을 다 벗긴 상태에서 머리카락을 자른다던가. 그럼에도 아이를 안은 엄마나 울면서 머리를 깎은 아이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카락 폭격을 맞는 건 매한가지였다.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직행해 샤워까지 마친 후에야 이 혹독한 미용실 월례행사가 끝이 났다. 지금은 첫째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을 수 있으니 훨씬 수월해졌지만, 아직 미용실에 적응 중인 둘째가 남아있다(···).

매번 우리 부부는 땀범벅이 된 채로 미용실 문 밖을 나서며 생각했다. 머리카락 자르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이구나, 아이가 태어나서 접하는 모든 것들이 아이에게는 큰 도전임을 깨달았다. 어른들에게 미용실은 가만히 앉아 머리를 맡기는 편안한 힐링의 공간이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충분히 공포스러운 공간일 수 있겠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이 난생처음 들어보는 윙윙 소리가 나는 기구를 들고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미용 가운을 두를 때부터 악을 쓰며 울어대던 아이가 어느새 혼자 의자에 앉아 파마를 하고 있다. 언제쯤이면 편안히 미용실에 올 수 있을까, 땀범벅이 되어 생각했던 그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도대체 언제 클래, 푸념하던 때로부터 벌써 5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아이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물론 앞으로도 수많은 일들이 펼쳐지겠지만 그 시간들도 여태 그랬던 것처럼 쏜살같이 흘러가 버리겠지. 지나간 시간은 결코 돌아오지 않으니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고,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지. 

그나저나 우리 둘째도 이렇게 파마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런 시간이 불쑥 찾아온다는 걸 알고 있는데, 시간이 왜 이렇게 더디게 흐르는 느낌일까…. ^.ㅜ

💬 파마를 하니 더 멋있어졌다며 폭풍 칭찬 세례를 받고 뿌듯해진 첫째😇 그리고 얼마 뒤, 잠든 아빠의 머리가 싹둑 싹둑 잘려있었어요😱 범행 현장에는 아이들이 쓰는 가위가…. 🤣 아빠도 멋있어지라고 잘랐대요 …. 🤣🤣🤣 

객원 에디터  |  Yulia

꾸럭미 넘치는 20년생, 21년생 연년생 형제와 12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