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남편은 붕어빵이다. 빼다 박은 것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얼굴 생김 하나하나부터 하는 행동까지 영락없는 판박이다. 하지만 사랑의 화살은 늘 엇나간다. 남편은 아이를 향해 오매불망 애정을 갈구하지만, 아이가 쏘는 화살은 항상 엄마인 나에게로 꽂힌다. 어린 시절 부자가 함께 살을 비비며 보낸 시간이 더없이 짧았던 탓도 있겠지만, 전업으로 엄마인 내가 아이를 전담하게 되면서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날이 갈수록 아빠보단 엄마가 더 좋은 현실. 남편은 서운하고 나는 괴로웠다. 이 문제로 많이도 싸웠더랬다. 주로 서로의 잘못으로 떠넘기곤 했다. 남편의 관심이 부족한 데서 오는 일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을 억지로라도 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아니다, 엄마인 내가 너무 감싸고만 돌아 그렇다 등등. 아빠보다 엄마를 좋아하는 일은 애초에 누가 더 잘못한 일일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하지 말아야 할 해로운 질문 중 하나. 처음부터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누가 더 좋고 덜 좋은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싶은 무의미한 질문을 나조차도 크는 동안 수도 없이 들어왔다. 자식 된 도리로 둘 다 좋다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릴 적의 솔직한 심정으로는 엄마가 더 좋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셨고 커서는 이해도 됐지만, 아빠는 어린 시절 딸에겐 한없이 다정했어도 엄마를 눈물짓게 하는 일이 빈번했다. 엄마가 흘리는 눈물의 양에 비례한 만큼 아빠가 미웠다. 이런 속마음을 몇 번 들키는 때가 간혹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는 서운한 빛이 역력하셨다. 싫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아이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는 만무하다.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상대적으로 남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고, 내가 항상 아이 옆에 줄곧 있었다. 한 번도 엄마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 아빠와 정을 붙이고 의지할 계기가 있을 리 없었다. 살갑지 않은 뚝뚝한 남편의 성격도 한몫한다. 네가 싫다면 나도 싫다는 식으로 아이를 대하니 돌아서면 그만이다. 거기다 장난이랍시고 살살 약을 올리며 울리기까지 하는데 사이가 좋을 리 없다.

아빠 미워, 아빠 싫어… 한 번씩 속상함에 거름망 하나 거치지 않고 솔직한 날 것 그대로를 내비치는 발언이 그래서 나오는 거다. 나로선 원인과 결과가 빤한데도 남편의 마음은 비수에 찔린 듯 치명적인가 보다. 무조건 엄마만 최고이고, 아빠는 그저 돈 버는 기계 따위의 존재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게 아닐까. 무심코 그런 말을 흘리며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사슴 같은 눈을 할 때면 나는 정색을 하고 정정해 주었다. 그런 몹쓸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말고, 철없는 아이 말에 일일이 의미 둘 거 없다고 위로 같은 다그침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남편의 표정은 더욱더 우울해 보일 때가 많았다. 나는 똑같이 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왔다 갔다 자주 끙끙거렸다.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남편이 심각한 얼굴로 근무처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했다. 쟁점 사안은 다 함께 이사를 할지, 아니면 기러기 생활을 할지였다. 신나게 놀던 아이의 얼굴에 갑자기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하더니 슬금슬금 소파에 앉은 남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무릎 위에 한 쪽 다리를 척하니 올린다. 남편은 기꺼이 바짝 아이의 옆에 붙어 앉아선 자연스레 어깨에 팔까지 두르고 손깍지를 끼며 난데없이 애틋한 연출이다. 나는 똑 닮은 둘을 번갈아 가며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이는 거의 울상이 되다시피 하여 아빠와 헤어져야 하는 거냐며 불안한 목소리로 여러 번을 되물었고 그럴 수도 있단 남편의 말에 아빠와는 절대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대성통곡이다. 당장 헤어지는 것도 아니고, 떨어져 지낸다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날 수 있다고 위로를 해줘도 막무가내. 아이는 한동안 남편의 곁에 꼭 붙어선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남편은 그런 아이를 더욱더 힘껏 껴안고는 입은 싱글벙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보란 듯 내게 속삭였다.

“아빠와 아들 사이는 칼로 물 베기야.”

언제 나 몰래 둘이 한바탕 싸우기라도 했던지. 부부 싸움은 그렇다고 하던데 과연 부자 사이에도 통할지는 모르겠으나 남편의 표정은 전에 없이 기뻐 보였다. 그걸로 된 게 아닐까. 아빠가 아무리 밉고 싫어도 헤어지는 건 눈물이 펑펑 나올 만큼 슬프다는 절절한 고백을 들은 남편은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가 되었다.

‘꽃밭에서’라는 동요에는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이 나온다. 채송화에 봉숭아, 새끼줄 따라 나팔꽃까지 어울려서 한창이다. 지금 둘만의 꽃밭 한가운데 남편과 아이가 다정히 손을 잡은 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 있다. 꽃 보며 살자고, 우리 꽃처럼 살자고. 오래오래 기억될 해사한 얼굴들을 하고, 꽃같이 만발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 올맘님들의 가정에도 다정다감한 부자, 부녀들이 있으시죠? 전 사이좋은 아빠와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저는 못 그래봤고, 제 아이도 남편과는 그리 애틋하진 않아서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선 둘 사이가 많이 돈독해져서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어요. 부디 둘만의 꽃밭에 서 있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애틋한 순간들이 쌓여 서로 죽고 못 사는 부자관계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객원 에디터  |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