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시작하면서 차고 넘치는 다양한 종류의 ‘국민 육아 아이템’ 들을 만났다. 만약 나의 육아 인생에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적잖은 좌절을 겪었을 것이고 더 많은 눈물을 찍어냈을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지만 나로선 그중에서도 단연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건 유아차다. 아이가 아기띠로도 감당하기 힘든 몸무게에 도달하여 어깨가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을 때, 아이 하나만 안고서도 이미 벅찬데 아무리 줄여도 줄지 않는 짐까지 양손에 들고 낑낑거릴 때, 남편 없이 혼자서 병원을 가야 할 때도 운전이 힘든 내게 구세주처럼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유아차였다. 

과거의 운전 경력이나 현재의 운전 실력 따윈 따지지 않던 너그러운 유아차는 10년째 장롱면허인 나에게도 한없이 관대했다. 유아차의 핸들은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웠고, 복잡한 출퇴근길에서나 좁은 골목길은 물론 높은 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침없이 질주하였으며 짐을 실을 수 있는 넉넉한 공간과 안전벨트에 완벽한 차양까지 갖춘, 과히 나의 육아 인생에 있어 동반자라 일컬어도 좋을 만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로 자리 잡은 유아차였다. 그러나 이젠 이 유아차와도 과감히 헤어져야 할 때가 다가오고야 말았다. 당연한 수순이겠지만 아이가 너무 커버린 탓이다.

유아차를 타고 참 많이도 돌아다녔더랬다. 집 주변 동네에서부터 마트, 병원, 어린이집에 오가거나 나들이를 나설 적에도 유아차는 믿음직한 친구처럼 동행했다. 사계절을 오롯이 느끼기에도 더할 나위 없었다. 봄엔 길가에 피는 형형색색의 꽃나무를, 여름엔 ‘지글지글’, ‘맴맴’, ‘쓰름쓰름’ 매미들의 각기 다른 합창을, 가을엔 울긋불긋 떨어지는 낙엽 비와 겨울엔 손발이 꽁꽁 시리도록 매서운 찬바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유아차만 타면 무엇이든 정다운 대화를 나눌 소재가 넘쳐났고, 한 번씩 멈추어 서서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졸리면 달콤한 낮잠을 청하거나 도토리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에 잠시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개미와 매미, 까치와 비둘기가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생명체란 걸 유아차를 타보지 않았다면 과연 알 수 있었을까.

얼마 전엔 갑작스레 아이가 깁스 신세를 지게 됐다. 한쪽 발에 붕대를 감은 아이를 데리고 한동안 통원 치료를 해야 하는 현실이 암담하였다. 하루아침에 장롱면허 실력이 일취월장 나아질 리도 만무하고 택시를 이용할까 하다가 가까운 거리라 유아차를 타기로 했다. 최근 들어 짐을 싣는 용도가 아니면 특별히 이용할 일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준 유아차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의 다리가 밖으로 삐죽하게 한참은 튀어나오고 이젠 머리가 커져 차양 안엔 아예 들어갈 수도 없이 돼버렸지만, 나로선 병원을 오가기엔 충분한 탈 것이었다.

햇볕이 따스한 주말엔 깁스로 인해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트렁크에 유아차를 싣고 가까운 곳으로 봄나들이를 다녀왔다. 발을 땅에 딛고 실컷 뛰어보지도 못하고 꼭 갇힌 것처럼 답답해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이는 거대한 배를 항해하는 조종사가 되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요리조리 방향을 가리키며 어디든 쭉쭉 신나게 나아갔다. 애초부터 유아차를 미는 엄마만 힘이 넘친다면야. 괜한 걱정이었다.

그동안 유아차와 함께 걸었던 수많은 길이 떠올랐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뒤섞인 길, 먼지가 풀풀 휘날리고 울퉁불퉁한 비포장 길, 장애물로 인해 도저히 나아갈 수 없던 길도 있었다. 게다가 이글이글 더운 날씨엔 뻘뻘 땀을 흘렸고 살을 에는 추위에 몸을 움츠리거나 사정없는 비바람에 정신을 못 차린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햇볕이 좋은 날이 유독 많았고 어떤 길이어도 힘차게 나아갈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든 걷고 달리고 멈춰 서서 평소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숨은 보물 같은 순간들을 셀 수 없이 만났고 아이는 그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이제 깁스를 풀면 이별, 유아차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뚝뚝 묻어있는 물건엔 더욱더 애착이 가는 터이기도 하고 다음에 또 만나기를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이라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질 테지만 마음 한구석에 고스란히 남은 행복했던 추억만큼은 오랫동안 반짝일 것이기에, 고마웠고 행복했었단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기쁜 마음으로 떠나보내려 한다.

💬 운전이 힘들었던 제게 유아차가 없었다면 육아가 정말 배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만약 유아차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면, 그동안 나를 대신해 아이를 싣고 다녀주어서 참으로 고마웠다고 꼭 얘기해 주고 싶네요. 혹시 올맘님들에게도 그런 고마운 ‘육아 아이템’의 존재가 있었을까요?

객원 에디터  |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