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푸릇 젊기만 할 줄 알았던 아빠, 엄마가 손자가 생김과 동시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됐다. 구름이 소복이 내려앉은 듯 하얗게 센 머리카락들을 바라보는 일에 이제 막 적응했는데 어느덧 엄마가 환갑을 맞이했다. 요즘은 환갑이라 해도 창창하다지만 시아버님을 첫 시작으로 줄줄이 60년 고개를 넘어선 양가 어른들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이 무상함을 느낀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느끼게 되는 놀라움 중 하나는 콩나물이 자라듯 쑥쑥 커가는 자식도 자식이지만 그에 반해 한 해 한 해 눈에 띄게 늙어가는 티가 역력한 부모님의 외양을 바라볼 때다. 

손등이고 얼굴이고 사정없이 피어난 검버섯과 선명히 패인 주름, 하나 둘씩 빠져버리는 치아, 크고 작은 질병들은 한번 자리하면 부모님의 곁을 좀처럼 떠나주질 않는다. 그런 연유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된다면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다. 힘없이 자글자글한 눈이 초롱초롱히 빛날 땐 하나뿐인 손주를 바라볼 때뿐이란 걸, 강아지 같은 손주의 재롱에 하회탈 같은 미소를 지을 유일한 때가 지금뿐이란 걸 알기에.

엄마의 환갑여행을 계획했다. 아빠 땐 못했으니 함께 여행을 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고, 멀미를 심하게 하는 엄마를 위해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는 국내를 선택했다. 이번엔 친정서 가깝게 살고 계시는 할머니도 동행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낙상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는데 다행스럽게도 눈에 띄게 나아지셨고 아빠의 오랜 바람이었다. 미취학 유아에서 환갑을 넘은 두 어른에 여든을 훌쩍 넘기신 할머니의 취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환갑여행이라니. 계획부터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숙소를 예약하고 모두가 입에 맞을 만한 식당을 정해 어디에서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지 등을 계획하는 일만도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여행길에 올랐는데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니 날씨가 사정없이 매섭다. 케이블카를 타려 했는데 예고도 없이 쌩쌩 비바람이 몰아친다. 할머니는 추운 데 오래 계시면 안 되는데. 그래도 할머니는 괜찮다며 오히려 씩씩하게 선뜻 발걸음을 옮기신다. 아이도 걱정하는 내 손을 잡아끌며 한껏 기대에 찬 표정이다. 비바람이 쳤지만, 다행히 케이블카는 정상 운행이었다. 푸른 망망대해 한가운데 대롱대롱 매달린 케이블카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우리 가족들.

비가 내려 흐렸던 하늘이 조금은 맑게 개었다. 쌀쌀히 몰아치던 바깥 상황과는 다르게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평온했다. 하늘의 끝과 맞닿아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언제고 이런 날을 또 맞이할 수 있을까. 감사와 기쁨에 한껏 젖어 들었다. 그날 저녁 제철을 맞은 방어회 맛에 감탄하던 아빠는 나와 남편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이런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주어서 너무나 기쁘고 고맙다고. 물론 엄마와 할머니까지 훈훈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여행 내내 우리는 몰아치는 바람과 사투를 벌여야 했지만,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머니는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오래오래 웃으셨다. 한 달 전부터 여행을 준비하는 내내 전전긍긍하고, 막상 떠나고서도 추운 날씨에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그깟 날씨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편안하고 쾌활하게 웃어주시던 어른들과 평소와 같지 않게 떼 한 번 쓰지 않은 아이가 있어 수월했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고 건강했기에 가능했던 환갑여행. 날이 좀 더 따스해지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계절이 찾아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다시 떠나고 싶다.

아이가 쑥쑥 커 가는 시간도 빠르지만, 부모님과 헤어질 시간도 그만큼 훅훅 빠르게 다가온다.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진 몰랐던 부모님의 시간. 지금의 내 나이였던 그 시절의 엄마, 아빠도 지금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아이를 키우며 먹고 사는 걱정에 허덕이느라 정신없이 바빴을까. 문득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게 됐다. 그리고 이젠 홀로 지내시게 된 할머니의 마음까지.

자식들을 길러내느라 고생하셨던 이 세상 모든 부모님이 부디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 애지중지 천금보다 귀하게 키우던 자식들을 이젠 다 떠나보내고 홀연히 남게 된 그 마음이 외롭지 않았으면. 푸르렀던 젊은 날을 지나 붉게 저물어가는 황혼의 노년을 바라보는 날들이 서럽거나 혹은 두려워 낯설지 않았으면.

그저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다.

💬 한 해 한 해 시간이 지나는 건 자연스런 순리라지만, 늙어가는 부모님을 뵐 땐 마음이 짠해지더라고요. 특히 이번엔 홀로 계신 할머니를 보며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노후 걱정 없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부모님이 외롭지 않고 그저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객원 에디터  |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