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개월의 어느 날, 첫째가 단호하게 선언했다. 

“엄마, 나 기저귀 안 해. 팬티 입고 잘 거야.” 

“음, 오늘은 기저귀를 하고 내일부터 해볼까?” 

기저귀를 뗐지만 혹시라도 실수를 할 새라 밤기저귀를 채워줬었다. 걱정되는 마음에 내일부터 해보자며 슬쩍 권유해 보았지만 아이는 완강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첫째는 기저귀와 공식적으로 이별을 했다. 팬티를 입고 자기로 한 첫날은 자기 직전 화장실을 두세 번 들락날락 했다. 실수할 까봐 걱정이 되었던지, 아니면 긴장이 되었던지 마지막 한 방울(?) 까지 쥐어짜고서야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리곤 정말 신기하게도 내내 실수 없이 잘 잤다.

그러다 이따끔 실수를 하는 날이 생기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늦게 잠든 날, 비교적 쉬를 더 늦은 시간에 하고 잤는데도 꼭 이불에 실수를 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픈 날에는 낮잠을 자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쉬를 하고 온몸이 축축한 채로 자곤 했다. 이불과 내복으로도 모자라 온몸이 젖은 채로 웅크리고 자는 모습이 짠하기도 하고 희한하기도 했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럴까. 안 축축한가? 감각에 예민한 편인 첫째는 옷이나 양말이 아주 살짝 물에 젖어도 갈아입혀 달라고 하는데 말이다.

어젯밤에는 방수패드를 깔아 놓은 자리에 실수를 했는데, 하필이면 방수패드가 옆으로 밀려나서 방수패드, 이불패드, 그리고 그 밑에 깔아 놓은 침대패드까지 모조리 젖었다. 와,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멘붕이 온 와중에도 일단은 아이 옷을 제일 먼저 갈아입혀야겠다 싶었다. “선준아, 일어서 봐” 비몽사몽인 채로 아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얼마나 우습고 놀랐던지. 옷 갈아입어야 하니 몸을 일으키라는 말이었는데, 잠에 취한 와중에도 곧이곧대로 엄마 말을 잘 들어주는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옷을 싹 갈아입히고 잠이 깰 새라 아이를 꼭 안아주고 있을 때, 남편이 이불과 패드를 치우는 것으로 상황이 종결되었다. 다시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보송한 이불을 덮어주며 잠든 아이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소변 실수야 종종 있는 일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 마음이 참 그랬다. “에고, 내 새끼 얼마나 찝찝했을까, 이제 보송보송하게 푹 자. 언제든 오줌 싸도 돼. 엄마가 이불 빨아주고 옷 갈아입혀 줄게.” 아이의 얼굴을 매만지며 한참을 토닥여주었다.

잠든 첫째 옆에 누워 가만히 눈을 감으니 어릴 적 내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꼭 우리 첫째처럼 나도 참 예민했고, 종종 소변 실수를 했다. 외동으로 사랑을 독차지하다 다섯 살 터울의 동생이 생기고 자연스레 모든 관심과 사랑이 동생에게 쏠렸는데, 그로 인한 상실감과 정서적 불안이 소변 실수로 나타났던 것 같다. 꽤 오랫동안 밤에 실수를 했고 돌아보면 그게 야뇨증이 아니었을까.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야뇨증은 꽤 오래 지속되었고, 그래서 나는 잠드는 게 무서웠다. “오줌 싸지 말자.” 매일 밤 속으로 100번쯤은 외우고 자야 마음이 편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느새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어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본다. 어린이가 혼자 고군분투하느라 참 힘들었겠다 싶다. 새벽에 실수를 해서 화들짝 놀라 몰래 일어나 팬티를 갈아입거나, 아니면 실수한 걸 들키고 싶지 않아 쉬한 채로 이불과 옷이 마르기를 바라며 억지로 잠을 청할 때도 있었다. 엄마는 한 번도 혼내지 않고 그저 모른 척 해주었다. 나를 데리고 소아과에서 상담을 받기도 했는데, 의사 선생님께서 괜찮다고, 다 지나간다고, 모른 척 해주면 알아서 잘 할 수 있다고 그랬던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엄마는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었던 것이다. 만약 그때 그 의사가 우리 엄마에게 다르게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편하게 잘 수 있게 밤에 기저귀를 채워 주시거나 방수 패드를 깔아주세요.” 그랬다면 그렇게 밤마다 오줌을 쌀까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오늘따라 내 마음이 참 그랬던 건, 소변 실수를 할까 걱정되어 잠을 이루지 못하던 어린 율리아가 아직 내 안에 남아있어서였나 보다. 그 시절의 내가 느낀 찝찝함과 수치심, 걱정을 내 아이도 똑같이 느낄까 싶어 지레 걱정이 앞섰나 보다. 그래서 언제든 마음 편히 자라고, 항상 마른 잠자리와 마른 옷을 마련해 주겠노라고, 이불 빨래 까짓것 세탁기가 하는데 다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하듯 아이에게 속삭이며 한참을 토닥여주었나 보다.

아이를 키우며 때때로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그때 그 시절 우리 엄마를 마주하게 된다. 소변 실수를 할까 봐 잠드는 게 두려웠고, 그 마음을 아무도 알아주지 못해 서러웠을 어린이. 맘카페도 육아동지도 없고, 쿠팡도 마켓컬리도 없고 지금의 나보다 훨씬 더 어렸던 우리 엄마. 이게 정답일까, 저게 정답일까 혼자 고군분투하며 고민하고 애태우며 우리를 키웠을 테지. 

엄마가 되어서야 우리 엄마의 최선을 마음으로 헤아리며, 어린 율리아가 받고 싶었던 위로를 스스로에게 전한다. 그리고는 아이를 다시 바라본다.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아이를 품어줄 수 있기를.

💬 밤에 이렇게 글을 남겨두고는 오늘 아침에 소변 실수를 한 걸 보고, 또 한숨을 포-옥 쉬었네요. 다행히 방수 매트였습니다…^_^; 혹시 저처럼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린 시절의 다 자라지 못한 나를 마주할 때가 있으신가요? 늦었지만 내 안의 어린아이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해보는 건 어떨까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8개월 1호와 18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