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 다가오면 우리 집 아이들은 꼭 장염을 앓는다. 하원 후 더러워진 손으로 아무거나 집어 먹으니 그럴 수 밖에. 나뭇가지를 잡고 아파트 화단 흙을 탐색하다가 온갖 난간에 다 매달려 보고 바닥을 기어 다니다가 새까맣게 더러워진 손으로 젤리도 먹고 과자도 먹고 수박도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다 보면 어느 날 설사를 하는 식이다.

타고나길 첫째가 둘째보다 장이 더 약하다. 같이 설사병을 앓아도 둘째는 경증으로 지나간다면 첫째는 수액을 맞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설사가 흐른다. 작년까지는 기저귀를 찼기에 설사가 흘러도 괜찮았다. 기저귀야 자주 갈아주면 되니까. 그러다 올해부터 팬티를 입게 되면서 종종 당황스러운 상황을 만나게 되었다. 방귀를 뀐 줄 알았는데 응가가 새버렸다거나, 배가 아파서 기저귀로 갈아 입으려고 바지를 내리는 순간 (아직 응가는 기저귀에 하고 있어요.) 응가가 쑥 나와버린다거나 뭐 그런 (···) 엄마를 절망케 하는 순간들 말이다. 

금요일 저녁 첫째가 묽은 응가를 하더니 다음 날 아침 설사를 연거푸 했다. 변 상태와 냄새로 봐서 장염, 그 놈이 다시 온 게 분명했다. 바로 병원으로 직행해 진료를 받은 뒤 수액을 맞힐지 고민했다. 수액을 맞아야 주말을 수월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도저히 혼자서 두 아들을 데리고 수액을 맞는 시간을 버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제 4살이 된 첫째는 아픔과 공포를 더 잘 알게 된 데다가 힘까지 세져서 수액을 꼽는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만 같았다. 첫째만 데리고 가면 어찌 저찌 버텨보겠는데, 첫째가 수액을 맞는 동안 둘째를 케어 하는 것도 두려웠다.

1시간 반 남짓 되는 시간 동안 수액실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지, 마침 애들 낮잠 시간과 겹쳐 두 아이의 낮잠 투정 폭격이 이어지진 않을까, 하필 이면 둘째의 애착이불을 집에 두고 왔는데 어떡하지(···) 일련의 걱정들로 오랫동안 수액을 맞힐지 말지 고민했다. 얼마 전, 나도 수액을 맞을 정도로 심한 장염으로 고생한 기억이 떠올라 결국엔 맞히기로 결단을 내렸다. 진료실에서 주사실로 향하는 그 짧은 순간, 첫째는 울며 불며 주사를 맞기 싫다고 했다. ‘하, 시작됐구나. 얘를 어떻게 달랜담.’ 

그런데 이게 웬걸? 수액을 꼽는 동안 울기는커녕 아이는 의연하고 점잖았다. 혹시나 발버둥을 칠까봐 두 팔을 꽉 잡고 있었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 혈관을 한 번에 찾아주셨고, 덕분에 첫째는 울지도 않고 그저 “우와아- 신기하다!”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었다. “아이고- 너무 너무 용감하네!” 두 간호사 선생님의 호들갑 섞인 칭찬에 으쓱해진 첫째는 멋지게 수액실로 향했다. 그리고 1시간 반 동안 정말 얌전히 잘 있어줬다. 내가 예상한 온갖 시나리오가 머쓱해 질 정도로.

2년 전, 첫째가 처음으로 수액을 맞던 날이 떠오른다. 둘째를 임신해 배가 불룩 한 채로 울며불며 악을 쓰는 첫째를 꽉 잡고 억지로 바늘을 꼽고, 행여나 힘들게 꼽은 바늘이 뽑힐 새라 기저귀로 둘둘 감싼 채 힘들게 수액을 맞혔더랬다. 아마 그 날의 기억이 내 안에 트라우마로 남았나 보다. 그래서 이번에도 온갖 소리를 다 지르고 발버둥을 칠 거라고 예상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오해이자 기우였다. 두 아이 모두 시간이 흐른 만큼 자라 있었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내 예상을 벗어나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유형의 엄마다. 그래서 이번에도 수액을 맞으며 아이들이 주변에 폐를 끼치면 어쩌나 망설였는데, 망설임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두 아이는 얌전하게 시간을 잘 보내주었다. 

첫째는 재밌는 tv를 보며 수액을 다 맞았고, 둘째는 둘째 나름대로 점프를 하거나 휴지나 리모콘을 탐색하기도 하고 엄마 핸드폰으로 자기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서 1시간 반이 쏜살같이 지나가 있었다. 중간 중간 둘째가 수액실을 나가려는 듯 문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해서 “나가면 안돼!” 라고 계속 주의를 주긴 했지만, 어쨌든 아이는 나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듯 정말 문을 여닫기만 했다. 문 밖으로 뛰쳐나간 둘째를 들쳐 업고 우는 첫째를 달래며 애쓰는 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나의 상상이란 게 증명되었다. 

둘째가 19개월로 자라는동안 첫째도 39개월이 되었다. 오늘의 육아 첫 글은 응아를 씻기 싫어하는 24개월 첫째의 궁뎅이를 팡팡 때리고 자기 전에 미안하다고 말하는 내용이었는데, 아마 나는 여전히 그때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이제 둘째는 말이 트이려 하고, 첫째는 말을 청산유수로 해서 자기만의 논리가 있고 그 논리가 비교적 타당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많이 자랐다. 

아이들은 매일 자라며 내 품에서 조금씩 빠져 나가고 있는데, 여전히 나는 아이들이 내 품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양 팔로 아이들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닐까.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한 발짝씩 물러서 아이들을 바라봐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말이다. 매일 우리는 가장 어린 오늘의 아이와 이별하고 있음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점점 아이들이 커가는 게, 그래서 언젠가 내 품을 떠나갈 순간이 다가오는 게 조금은 서운한 가 보다.

💬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엄마도 자라야 하는데,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엄마의 성장속도가 따라 잡지 못하는겐가 싶던 날의 이야기에요🤣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은 콩나물처럼 아이가 쑥쑥 큰다고들 하는데 매일 곁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면 뒤늦게 성장을 체감하는 순간도 있죠. 한층 자란 아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내 품을 떠날 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서운해기도 하고, 아이가 자란만큼 엄마는 자랐나 싶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 날이 있잖아요. 올맘님들도 혹시 저처럼 아이의 성장을 체감하던 순간이 있나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9개월 1호와 19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