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벌써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내일 아침 등원 준비가 힘들어질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동물원 놀이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바이킹을 열 번은 탄 것 마냥 속이 좋지 않고 온 몸은 꽈배기처럼 배배 꼬여만 간다.

“엄마, 이번엔 공룡놀이 어때?”

무려 두 시간 가까이 진땀을 흘렸는데 숨 돌릴 틈도 없이 공룡의 등장이라니.

“지금 열시가 넘었어. 자야 할 시간이야.”

“잠이 안와요.”

밀고 당겨야 하는 지점이다. 여기서 내가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놀이는 끝나지 않을 터다. 하지만 윽박지르거나 화를 낸 채 일방적으로 자야 한다고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건 반칙이다. 놀이의 세계에서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첫 번째 규칙은 바로 아이가 놀이에 만족할 때까지 놀고 나서 스스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 그래야 뒤탈이 없다. 고난이도의 기술이 들어갈 차례다.

“공룡놀이가 더 하고 싶구나. 근데 지금 자야 할 시간이 지났으니까 열 번만 하는 건 어때?”

“좋아요.”

아이에게 거짓말은 안 되지만 열 번만 한다고 하고 서너 번쯤 하다가 적당히 물러나는 기술이다. 일종의 속임수다. 그렇게 공룡놀이에 돌입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번 놀이는 박치기다. 나는 한밤중에 트리케라톱스의 뿔 공격에 뒤로 나자빠지고, 파키케팔로사우루스의 머리밀기 공격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쭉쭉 늘어져버린 옷깃, 당최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뒤엉킴 속에서 여기가 진정 쥬라기 공원이구나 싶었다.

“이제 열 번. 다 했다. 이제 들어가서 자야 해.”

“아직 열 번 아닌데? 더 놀고 싶어요.”

“쿵쿵 소리가 나면 아래층 이모가 시끄럽다고 하실 거야. 지금은 다들 잠잘 시간이거든. 우리 방에서 누워서 놀이 하자.”

드디어 쥬라기 공원의 탈출을 목전에 두고 기쁨에 겨워 일어서려는데 아이의 한마디가 발목을 잡는다.

“엄마, 제가 뽀뽀해 줄게요.”

아, 만만찮은 고단수다. 상대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결국 속임수는 통하지 않았다. 대신 소란스런 공룡놀이가 아닌 조용한 자동차놀이를 하자고 약속했다. 그렇게 열한시를 꽉 채우고 나서야 놀이가 끝났다. 아이는 매우 만족스런 상태로 잠이 들었고 누운 지 1분 만에 꿈나라로 떠났다.

놀이의 세계에 한 번 입장하면 퇴장은 매우 어렵다. 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 없이 진심을 다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노는 것이다. 우리 집 다섯 살 놀이의 고수는 다 안다. 내가 놀이에 진심인가 아닌가를 꿰뚫고 있다. 그냥 적당히 꼼수를 부리다가는 큰 코 다친다. 때론 몸이 지치고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조용히 다가와 힘을 불어넣어주기도 한다. 뽀뽀를 해준다든가, 안아준다든가 애교 섞인 목소리와 한껏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이며 제발 한번만 더를 외치면서. 이럴 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 올맘님들은 우리 아이와의 놀이가 어떠신가요? 전 다가오는 주말이 참으로 두렵습니다 😔 최근엔 아들이 포켓몬을 알게 됐어요. 덕분에 매일 포켓몬 역할놀이를 하고요, 또 일찍 재우고자 체력을 빼야겠다 싶어 자전거를 한 대 사주었는데 나가자마자 근 10분 만에 보란 듯이 무릎에 피를 철철 내고야 말더라고요. 하,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오늘도 두 주먹 불끈 쥐어봅니다.... ✊🏻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