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6개월이 되던 달, 두개골조기유합증 진단을 받았다. 아이는 생후 6개월까지 왼쪽 두개골이 더 비대하게 자라 고개가 늘 삐딱했는데, 그로 인해 안구 발달이 늦어진 것인지 사시가 생겼다. 대구에 살지만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두개골 수술을 받았기에 안과 진료도 서울에서 보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경과도 좋아 1년에 1번만 신경외과 진료를 본다. 그 결정이 내려진 날, 너무 행복했다. 이 힘든 서울 여정을 1년에 1번만 하면 된다니! 그런데 작년 12월 안과 진료를 본 후, 기약 없는 서울 여정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생후 21개월, 13kg의 씩씩한 친구와 함께 당일 치기로 KTX를 타고 병원을 다녀오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두개골 진료를 위해 병원을 다닐 때는 온 가족이 총출동해 전날 서울에 도착해 하룻밤 자고 진료를 보러 가기도 하고, 대구에서 꼭두새벽에 출발해 진료를 보기도 했다. 어떤 쪽이든 온 가족이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첫째는 대기를 오래 해야 해서 힘들고, 남편은 그런 첫째를 달래야 해서 힘들고, 나는 둘째를 안고 이리저리 불려 다녀야 해서 힘들고, 둘째는 진료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그런 반복은 자연스레 역할 분담으로 이어졌다. 남편이 대구에서 일하며 첫째의 등하원을 책임 지고, 나는 둘째를 데리고 당일 치기로 진료를 다녀오는 것으로.

호기로웠던 외래 첫 날, 아직 어린 둘째와 아기띠로 한 몸이 된 채 유모차를 들고 배낭을 메고 나홀로 서울행 KTX에 올랐다. 당시엔 분유를 먹던 때라 바리바리 챙겨갈 짐도 많았다. 다행히 서울에 사는 친구네 부부가 서울역에서 차로 병원까지 데려다 주었고, 두번째 외래는 친한 동생이 대구에서 서울까지 일부 여정을 동행 해주었다. 그렇게 홀로 두 번을 대구에서 서울까지 왔다 갔다 해보니 도저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진료 예약이 있는 달에 접어들면, 머리 속이 걱정으로 가득 찰 정도로 KTX를 타는 게 두려웠다. KTX 안에서 아이가 짜증을 부리면 어쩌나, 화장실을 가고 싶어 지면 어쩌나. 매일 온갖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며 스트레스를 받았더랬다. 결국 친동생한테 연차를 쓰고 함께 병원에 동행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일단 동생과 함께 가면 내 마음이 편안하다. 그걸로 끝이다. 마음이 편하면 모든 게 다 해결되기 때문이다. 적막한 KTX 안에서 둘째가 소리를 내도 마음이 덜 조급하고, 동생이 옆에 있으니 유모차를 펼칠 수 있어 내 몸도 편안하다. (36개월 미만인 둘째는 좌석을 지정하지 않고 내가 안고 타는데, 우등석 맨 앞자리를 예매해 발 앞에 유모차를 펴서 앉힌다.) 그렇게 1시간 40분을 버티면 동생이 가방과 유모차를 들어주니 지하철을 타러 가는 것도 훨씬 빨라진다. 서울역 엘리베이터 안에서 노숙인이 둘째를 만지려 할 때 막아주는 것도,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대령해주는 것도 모두 동생이다.

처음으로 동생과 둘째의 진료를 보러 서울에 간 날이었다. 이제 1년에 1번만 와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서울대 병원을 나와 길 건너 대학로에 가보았다. 여태껏 아이와 함께 병원을 오가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인생네컷 사진도 찍어보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둘째와 하하호호 웃으며 대학로를 누볐다.

몇 달이 흘러 다시 올해 여름, 동생과 함께한 서울 여정도 벌써 3번째에 접어들었다. 수술 날짜를 잡으러 갔는데, 또 미뤄져서 3개월 뒤에 다시 내원해야했다. 설상가상으로 3개월 뒤엔 신경외과 진료가 잡혀 있어 2주 사이 서울을 두 번 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지만 우선은 밥부터 먹자며 땀을 뻘뻘 흘린 채 식당에 들어갔다. 폭염주의보가 발효된 그날은, 아이가 흘린 땀으로 유모차 시트가 다 젖을 정도로 더운 날이었다. 다행히 순한 둘째는 이 더위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낮잠을 자주었다. 

대구로 돌아오는 길엔 폭우로 열차가 지연 돼 2시간이 넘게 KTX를 탄 데다 너무 더워서 고생을 했다. 서울로 가는 KTX 에선 아이가 잘 버텨주지만, 사실 돌아오는 KTX 안에서는 짜증을 많이 부린다. 어른도 힘든데 아이는 오죽하겠냐만 다른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칠 새라 아이가 내는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귀갓길에는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이라 아이를 케어 하는 게 조금 더 버겁기도 하다. 

그렇게 하염없이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도 작은 위안이 되는 순간이 있다. 뒤에 앉은 승객이 둘째를 보며 까꿍을 해주신다거나, 통로를 지나가던 승객이 귀엽다며 인사를 건네주신다거나, 엄마 마음이 불편할 새라  자리의 시끄러운 둘째를 부러 못 본 척해 주신다거나, 본인 아들이 생각난다며 엄마, 힘내라고 격려를 건네고 가신다거나 하는 순간들. 아이의 목소리가 주변에 폐가 되지 않길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KTX 속에서 이러한 미소와 사소한 친절은 큰 위안이 된다.

사실 우리보다 더 먼 곳에서 진료를 위해 오고 가는 분들도 계실 것이다. 동생이 있어 그나마 걱정을 덜고 쉽게 오고 갈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앞으로 또 진료를 위해 아이를 몇 번이나 서울을 오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저 아픈 아이들이 빨리 낫기를, 나처럼 용기 내어 홀로 KTX에 오르는 엄마들이 적어지길 바랄 뿐이다.

💬 공공장소에서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예상 밖의 상황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대문자 J형 엄마라 ktx를 타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어요… 😂 그래도 둘째와 함께 ktx를 잘 타는 요령을 하나 둘 체득하고 있답니다...😇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41개월 1호와 21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