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만난 5명의 친구들이 있다. 시험이 끝나거나 생일 날이 되면 돼지갈비나 피자를 같이 먹었던 친구들이자, 1년에 한 번은 단체로 이미지 사진을 찍었던 친구들. (요즘 세대는 인생 네컷이나 셀프 사진관을 가던데, 그 시절엔 시내 지하상가에서 포토샵으로 얼굴을 고쳐주는 이미지 사진이 유행이었다.) 그 중엔 나와 함께 열성적으로 빅뱅을 좋아하던 친구도 있어,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콘서트에 달려가기도 했었다. 

그 시절 인문계 고등학생이라면, 등교가 시작되는 아침 7시 반부터 야간 자습을 마친 밤 11시까지 온종일 학교에서 친구와 함께했다.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걸상에 앉아 동고동락하던 우리는 대학생이 되어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만남의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갔지만, 매년 여름만큼은 펜션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취업을 준비하고, 일 인분의 몫을 하는 어른이 되며 함께 모이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몇 년 만에 봐도 어제 본 것 같은 사이였다.

애보냔들, 애 낳고도 보자 이냔(?)들아. 열일곱의 우리가 나이가 들어서도 평생 보자며 우스갯소리로 지은 이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새파랗게 어렸던 열 일곱의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나이듦이란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처음 만난 열 일곱에서 2배의 세월이 흐른 지금, 정말로 그런 날이 왔다. 대구에 남은 친구 둘과 나는 같은 해에 아이를 낳아 엄마도 친구, 아이들도 친구이다. 서울에 있는 친구의 아이는 우리 집 둘째와 친구고, 호주에 있는 친구도 이번 해에 아이를 낳았으며, 가장 마지막에 결혼한 친구도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그렇게 열 일곱 여고생들이 모두 엄마가 된 것이다.

올해 여름은 아기들과 함께 3명의 친구들과 키즈룸에서 모였다. 아이가 생긴 후론 키즈룸·키즈펜션·키즈카페로 모임 장소가 동결이다.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집에서 다 같이 모이거나. 우리는 일행 중 가장 먼저 키즈룸에 도착해 첫째와 함께 실내 풀장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엄마, 나 수영 잘하지!” 얼굴에 뿌듯함을 한 가득 담아 뽐내던 첫째의 얼굴이 생생하다. 사실은 수심이 엄청 얕아서 쪼그려 앉아 걸어갔으면서. 물을 많이 무서워하던 작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일 년 새 물놀이를 즐기는 네 살이 되었다.

그렇게 엄마와 시간을 보내던 중, 뒤이어 친구들과 동생이 합류해 조금은 쭈뼛거리며 어색해했지만 금세 아이들은 잘 어우러졌다. 물놀이도 함께 하고 목욕도 함께 하고 밥도 같이 먹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그 정도면 양호했다. 아이들이 잘 놀아준 덕분에 엄마들도 마음 편히 근황을 주고 받으며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 수다 삼매경이 시작되었다. 퇴실 전에는 아빠들도 함께 모였는데, 감사한 건 아빠들끼리도 그리 서먹하지 않다는 점. 아빠들의 나이대는 다양하지만 (우리 집 아빠가 제일 나이가 많다 허허..) 캠핑이라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으며, 같은 직군인 아빠도 있어 여러모로 대구에 남은 ‘애보대구유닛’은 신기하다.

사실 아이가 생긴 뒤, 삶의 초점이 내가 아닌 아이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어려움과 불편함이 있었다. 늘 나를 중심에 두고 생활하다가 출산 후 일상과 삶의 전반이 아이가 우선시되며 나는 지워지고 아이만 남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시간이 더 흐른 지금은 아이가 중심이 된 삶이 더 이상 속상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좋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자아도 결국은 나라는 걸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받아 들이게 된 셈이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육아를 하는 친구들이 지척에 있어 서로를 삶을 공감하고, 대견해하고, 위로해줄 수 있어 좋다. 결혼을 할 때만 해도 서로의 달라진 삶에 예전과 같은 유대감을 느낄 수 있을까 했는데, 모두 다 엄마가 되어 공통분모를 찾은 셈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이런 인연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17년 전, 우리는 같은 교복을 입고 작은 일에도 울고 웃으며 때로는 서로를 시기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함께라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17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었다. 어떤 친구는 워킹맘으로, 어떤 친구는 이민자로, 어떤 친구는 가정주부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모두 엄마다.

삶의 모양이 달라져서 자주 보지 못해도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옛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엄마라는 공통 분모를 공유하고 있음에 감사하다. 왁자지껄한 하루를 함께 보내고 돌아오던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호시절을 함께 보내고 있다고.

💬 호주에 사는 친구가 한국으로 와 몇 년 만에 애보 친구들과 완전체 모임을 가졌어요. 어찌나 재밌고 신나던지!😆 나의 옛 시절을 함께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에요💖 혹시 오늘 글을 읽고 생각나는 친구가 있으신가요? 😊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떠나보시는 건 어때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42개월 1호와 22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