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씩은 다 겪는다는 돌발진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이후로는 남들 다 걸리는 건 나도 걸리리라 마음을 먹은 듯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매달 월간행사 마냥 열이 오르는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다. 열이 어느 사이엔가 꼭 달에 한 번은 찾아오는 손님이 됐다. 다음에는 오지 말라 해도 보란 듯이 또 오고야 마는 반갑지 않은 손님. 갈 때는 버선발로라도 뛰어나가 어서 가시라 배웅하지만 온단 말도 없이 불쑥 찾아올 땐 대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그저 조용히 지나가기만을 바라지만 열은 어김없이 쾅쾅쾅 대문이 부서져라 내가 왔노라 엄포를 놓는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해도 손님맞이는 쉽지 않다. 변덕이 심하고 별스러워 언제고 갈 때를 일러주지 않고 죽치고 퍼질러 앉아 있기 일쑤고 어떻게든 잘 구슬려 내보내려 해도 쉬이 떠날 생각이 없을 땐 몇 날 며칠 밤을 꼬박 새우는 정성을 보여야 그나마 가는 시늉이라도 한다. 마음을 한시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불청객이 이번 달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축농증으로 인한 열은 고열이다. 일주일 넘게 코감기가 떨어질 생각을 안 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급성축농증이 오고야 말았다. 아이는 나를 닮아 유독 코가 예민했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코 점막을 가라앉힐 유일한 방법은 오직 이비인후과 선생님이 주신 약뿐이다. 그래도 약에만 의존하는 게 영 마음에 걸려 매일 환기를 하고 청소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보아도 큰 소용은 없다. 달이 바뀌고 아이가 안 아프고 괜찮은 날이 길어지면 드릉드릉 어디서 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올 때가 됐는데 싶을 땐 어느 사이엔가 열이 먼저 오든지, 코감기가 먼저 오든지 아니면 손잡고 같이 온다. 그래서 일주일 넘게 열심히 축농증 약을 먹였다. 도중에 끊을 수도 없는 약이라 부엌 한 곳에 자리한 구석에는 아이의 이름이 적힌 약 봉투들이 그득하다. 옹기종기 모인 플라스틱 약병들이 자기네들끼리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언제 날을 잡아 다 치워버렸는데도 그 새를 못 참고 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제는 아주 이골이 나서 언젠가는 당당히 이 약병들과도 이별을 고해야지 싶었는데 이번엔 내가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몇 시간씩 병원에서 대기를 하고 아이의 고열로 며칠 밤을 샌 탓이었을까. 피곤하고 잠이 부족하면 평소에도 미열이 있던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더할수록 열이 오르더니 몸살 기운도 돌고 몸도 으슬으슬 추웠다. 예사롭지 않은 열이었다. 결국, 코로나 양성 진단을 받았다. 

아, 코로나는 처음이었다. 한창 유행할 시기에도, 아이가 작년에 먼저 코로나에 감염이 됐을 때도 요리조리 잘 피했었는데 어처구니없이 이렇게 쉽게 당하고 말다니. 마스크를 꼼꼼히 하고 거리를 두려는데 아이는 도저히 나와 격리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어 보였다. 아니, 처음부터 협조할 생각도 없었다.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으니 가까이 오면 안 된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대성통곡이 이어졌다. 엄마 껌딱지가 그깟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를 이기지 못하겠는가. 처음부터 상대도 안됐다. 그렇게 아이는 두 번째 코로나 진단을 받았다. 

축농증이 겨우 다 나아서 이제 3일만 더 약을 먹이면 이제 곧 해방이었는데. 열이 또 왔다고 스리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그놈의 엉덩짝을 발로 뻥 차서 다신 오지 마라 시원히 날려버리고 싶은데 이번엔 잔잔한 미열이 참 오래도 간다. 작정을 한 모양인지 교묘히 낮에는 미열로, 밤에는 고열로 얼굴을 바꾼다. 조용하던 숨소리가 다시 콧물에 막힌 코맹맹이 소리로 원상복귀를 했다. 미열에서 고열로 바뀌는 잠들 무렵쯤 해열제를 먹이니 송골송골 땀이 맺히며 열이 내리지만 내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미열의 얼굴을 하고 찾아오겠지. 

아, 점점 지쳐만 간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 보아도 아이는 어김없이 아프고, 또 아프다. 열이 오르고 또 오른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수를 써야 하루라도 아프지 않고 한 달을 보낼 수 있을까. 유치원 출석일수보다 병원 진료 본 날이 더 많고 이제껏 먹인 밥 보다 항생제와 감기약을 더 많이 먹인 것 같은데. 

어릴 때 자주 아팠던 아이가 커서는 덜 아프다는 말은 이제 큰 위로도 되지 않는다. 그냥 모든 것이 다 나의 불찰인 것만 같아 마음이 허허한 중에 아이를 씻기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엄마 때문에 네가 또 아프구나, 미안하다 훌쩍이는데 아이가 코가 꽉 막혀 맹맹한 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먼저 내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엄마. 나 이젠 기침도 안 하는 걸?”

어릴 때 나는 지독한 비염환자였다. 그걸 고대로 아이가 닮아 이리 힘들어 하는데, 코가 막히면 제일 먼저 머리가 답답하고 어지러울 텐데 이젠 코로나에 재감염이 되어서 또 다시 괴로운 중에도 짜증 한 번 없이 엄마를 위로하는 아이를 보니 더욱 맘이 시큰거렸다. 

부디 오늘밤이나 내일 밤엔 열이란 불청객이 자기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다음 달엔 바이러스란 바이러스는 다 달고 오지 말고 제발 지나쳐갔으면. 열외 없이 찾아온다면 제발 딱 하루만 다녀가길. 잔잔히 앉아 있지도 말고 미련스레 어영부영 맴돌지도 말고 훌훌 털고 떠나주길. 그래서 부디 무탈하게 오늘밤을 넘기고 뜨겁고 치열한 내일을 맞이하기 보다는 미지근하지만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 아픈 아이를 보살피고 계실 올맘님들, 부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길, 그리고 내일은 언제 그랬냐는 듯 훌훌 털고 우리 아이의 씩씩하고 밝은 미소를 맞이하길 바라고 또 바랍니다.

객원 에디터  I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