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가정보육

3월의 어느 토요일 오후, 따사로운 햇살에 가벼워진 옷차림 만큼이나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1호와 함께 친구 집으로 향하는 길. 이게 얼마만의 바깥 나들이인가! 2호를 낳고 처음 하는 외출에 내 마음은 한껏 들떴고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 지 1호의 기분도 좋아 보였다. 코로나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몇 달 만에 만난 친구와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한껏 풀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띠링- 익숙한 키즈노트의 알람이 울렸다.

‘설마 또 원에 코로나가..?’ “00어린이집의 원아 한 명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뿔사 불안은 현실이 되었고 내 머리 속은 새하얘졌다. 지금 우리는 13개월 아기가 있는 집에 놀러 왔는데 어떡하지?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몇 번이나 사과를 한 후 황급히 1호를 들쳐 메고 문 열린 약국을 향해 뛰어갔다. 다행히도 자가 검진 키트 결과는 음성이었지만, 키트 검진 결과는 정확도가 떨어진다기에 병원에서 또 한 번의 검사를 받았다. 아이 코를 몇 번이나 찌르는 건지 마음이 착잡했다. 다행히도 병원 검사 결과는 음성이었다. 감사한 결과지를 들고도 앞으로 가정 보육을 할 생각에 눈 앞이 캄캄해졌다.

하필 2호의 조리원 퇴소 시기가 1호의 어린이집 겨울 방학과 겹쳐 10일간 독박육아를 한 적이 있었다. 몸조리고 뭐고 두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고 응아를 치워주는 것만으로도 10일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호의 어린이집에 코로나가 터져서 또 둘을 혼자 보았다. 그즈음의 2호는 먹고 자는 것 밖엔 몰랐고 1호도 아직은 동생에 대한 질투가 없을 때 여서 그나마 어찌저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1호의 질투와 집착이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2호의 잠이 줄면서 엄마 품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다. 1호의 짜증을 하루 종일 받아내며 2호의 커진 울음소리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아침 7시에 일어난 1호는 기상하자마자 냉장고 문부터 연 다음 장난감 방으로 달려가 자동차를 타고 경적을 울리며 거실 복도를 쌩쌩 달린다. 그러다 동생 쏘서를 타고 방방 뛰다가 혼자 나오지 못해 온갖 짜증을 부린다. 간식으로 마음을 좀 달래주면 사운드북을 틀어 노래를 듣다가 장난감 통을 거실로 끌고 나와 냅다 부어버린 뒤 잘 자고 있는 2호를 깨우기 시작한다. 그러면 참다 못해 티비를 틀어줘야 하는 순간이 온다. 티비를 튼다고 평화가 찾아오느냐? 3분마다 다른 채널을 틀어줘야 하기 때문에 한 손엔 둘째를 안고 한 손으로 3분마다 원하는 채널로 돌려줘야 한다. 이 모든 게 아침 기상 후 등원 전까지 일어나는 일.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몇 번이나 반복되는 지난한 우리의 일과. 

어느덧 가정 보육 5일차, 남편의 퇴근과 동시에 아이들을 바톤터치하고 밀린 집안일을 시작한다. 정신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신나는 음악소리와 함께 1호의 웃음소리가 온 거실에 울려 퍼졌다. 도대체 뭘 하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1호와 남편이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이 끝나고 다음 음악이 나오기 직전,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다음 노래를 기다리며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멈춰 있는 1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방금 전에도, 지금도 눈 앞에 설거지거리가 가득한 현실은 똑같은데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졌다. 설거지를 얼른 끝내고 신나는 춤판에 슬쩍 끼었다. 2호가 안방에서 쿨쿨 자는 동안, 1호와 우리 부부는 신나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문득 1호의 신생아 시절이 떠올랐다. 어찌나 잠에 예민한지, 그 시기의 난 인간 바운서였고 잠을 안 자는 1호 때문에 스트레스가 최고조였다. 남편은 잠을 거부하며 빽빽 우는 1호를 안고 무심하게 내 귀에 이어폰 한 짝을 끼워줬다. 이어폰 속에서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눈이 마주치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춤을 췄다. 춤판 가운데 1호가 스르륵 잠들었다. 이제 1호는 엉덩이도 좌우로 흔들고 손뼉도 치고 왼발을 바닥에 찍고 오른 발로 원을 그리듯 꼭지점 댄스를 출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 그리고 안방에는 그 시절 1호보다 더 자란 아기가 자고 있다.

앞으로 몇일 더 혼자 두 아이와 부대껴야 하지만 그래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오늘 밤에는 그런 자신감이 들었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아 지난 날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만큼 자라 사랑이 가득한 아이들을 마주하니 앞으로도 이렇게 매일을 살아내면 되겠다는 안도감이 든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이 소리를 지르고 다그치게 될 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을 감내할 만큼 행복한 순간이 가득할 거라는 걸. 너무 힘들지만 너무 행복하다.

💬 너무 힘들지만 너무 행복하다는 말, 다들 공감하시죠? 가정 보육으로 고군분투중인 모든 육아맘들 응원합니다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