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지금은 나른한 토요일 오전 10시에요. 이번에는 늦지 않고 써니의 편지를 보고 바로 왔답니다. 우리가 핸드드립을 배우는 그 곳에서 주문한 커피와 향긋한 백도로 아침을 대신하며 답장을 쓰고 있어요. 밖에는 맴맴- 매미 소리와 장미 대신 곳곳에 늘어진 능소화가 보이네요. 눈으로 귀로 입으로 여름을 한껏 실감하는 요즘이에요. 써니의 균형은 늘어난 시간이 만들어준 마음의 빈 공간 덕분이었군요. 옆에서 오랜 시간, 써니의 주말 부부 생활을 본 사람으로서 합가와 이사로 마음의 균형을 찾은 것 같아 정말 다행스러워요 🙂 

요즘 우리가 함께 하는 커피 수업은 저에게도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이제 내일이면 수업을 절반 가량 들은 셈인데, ‘절반이나’가 아니라 ‘절반밖에’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 말이죠. 새로운 경험을 마주하며 제가 느낀 것들이 궁금하댔죠? 사람이 바뀌려면 시간을 쓰는 방식, 만나는 사람, 사는 장소가 변해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그 곳에서 핸드드립을 가르쳐 주시는 우리네 아빠뻘 즈음 되시는 선생님을 보며 확실히 사람에게 영향력을 가장 크게 미칠 수 있는 건 사람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커피를 배우는 그 곳은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하는 소위 말하는 핫플도, 커피로 이름난 카페도 아니죠. 겉보기에 투박해 보일 수 있는 동네 빵집이에요. 그렇지만 로스팅도 직접 하시고, 스페셜티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내려 주시는 반전이 있는 곳이죠. 치아바타나 깜빠뉴 같은 발효종 빵들도 있고요. 이 동네에 이사 온 지 얼마 안되어 저만 몰랐을 뿐, 오랜 기간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담뿍 받아온 곳 이더라고요. 편의상 이제부터 이 곳을 곰돌이 빵집이라고 칭할게요. 빵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푸근한 곰돌이 그림이 그러져 있거든요.(웃음) 제가 어떻게 곰돌이 빵집을 알게 됐냐면요. 이 동네에서 회사를 다니는 동생이 봄,겨울 시즌 딸기 케이크가 맛있다고 추천해줬어요. 아니, 이런 곳에 빵집이 있다고? 생각 될 만큼 생소한 골목길 끝에서 간신히 찾은 그 곳에 들어서니 잊혀진 기억들이 떠올랐어요.

써니는 파리바게트나 뚜레쥬르가 없던 시절의 빵집을 기억하나요? 주황색도 노란색도 아닌 9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오묘한 색깔의 손잡이가 뚫린 비닐봉지에 소세지빵이나 소보루빵, 카스테라 따위를 가득 담아 돌아오곤 했던, 빵 이름과 가격표를 손으로 직접 적어두었던 그 때 그 정겨운 시절의 빵집이요. 곰돌이 빵집도 어린 메이가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던 시장 앞 빵집처럼 세련되진 않지만 시간의 더께가 쌓여 따뜻하고 다정한 정서가 흐르는 것 같았어요. 오로지 인스타그램 속 사진 한 컷을 위해 낮은 테이블과 등받이가 없는 스툴로 의자를 대신한 카페들보다 이런 곳이 더 좋더라고요. 별다른 꾸밈이 없어도 그 곳을 꾸려가는 사람들의 온기와 흔적이 가득한 곳이요.

찬찬히 둘러보니 국내산 밀, 우리 통밀만 사용하고 NO버터, NO계란,NO우유. 게다가 최소 36시간 이상 발효를 시키는 슬로우 브레드. 저는 베이커리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수입산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우리 밀 농가에서 직접 가져온 토종 밀로 빵을 만든다는 게 어렵고 모험적인 일이라는 건 알아요. 이 곳만의 소신이 있을 것 같아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찾아봤더랬죠. 마더스올도 제품을 만들 때 좀 고집스럽잖아요. (웃음) 그래서 그런지 마더스올에서 일하고부턴 자기만의 소신을 가진 곳을 만나면 더 눈길이, 마음이 가더라고요.

곰돌이 빵집의 블로그 게시글이 총 몇 개 였게요? 놀랍게도 무려 600개가 넘더라고요. 우리도 SNS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저 만큼의 게시글이 쌓이려면 얼마나 진한 마음과 에너지가 필요한지 잘 알잖아요. SNS만 전담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닌 이상 꼭 해야 하는 업무들에 우선순위가 밀려서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게, 생각보다 큰 마음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더라고요. 

600개가 넘는 글 속에는 빵과 직접 로스팅한 커피에 대한 자부심 외에도 꾸준히 이웃을 돌보는 선행을 엿볼 수 있었어요. 수년 간 노숙인들을 위해 매주 도시락을 나눠드리고, 겨울에는 패딩을 선물해드리는 대가 없는 사랑의 마음이 거기 있더라고요. 그걸 본 곰돌이 빵집의 단골손님들도 동참하고 싶어 후원을 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요. 단골 손님들과 편지를 주고 받으며 경조사를 서로 축하해주기도 하는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어요.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고 사는 요즘, 곰돌이 빵집과 그 곳을 둘러싼 사람들에게서 피어나는 따뜻한 마음들을 보고 있자니 ‘마을’ 이나 ‘이웃’ 같은 이제는 부를 일이 없어진 단어들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러다 저도 모르는 새 그곳의 따뜻한 기운이 스며들었는지 핸드드립 클래스를 오픈 한다는 피드를 보자마자 냉큼 신청했지 뭐에요.

첫 수업 날 푸근한 인상의 아빠뻘의 선생님이 저희를 반겨 주셨죠. 처음에는 말도 안되게 저렴한 수업료에 ‘남는 게 있으실까…?’ 마케터의 직업병이자 괜한 오지랖이 발동해 속으로 수지타산을 따져봤더랬죠. 회 당 수업 시간이 2시간이 넘어가는데 5회에 15만원이면 1회당 3만원. 몇 년 간 제법 많은 수업을 들어봤지만 단연코 이런 수업료는 없었어요. 고가의 원두라 재료값도 만만치 않을텐데 말이죠. 헌데 이런 걱정은 선생님과 대화를 해보고 나서 씻은 듯 내려갔어요. 정말 자기 일을 사랑하고, 커피를 좋아해서 알리고 싶은 마음으로 하시는 거란 걸 아마 제가 아닌 누구라도 다 알 것 같더라고요. 좋은 원두를 올바른 방식으로 내려 먹는 것, 커피콩에 담긴 가지각색의 다채로운 맛을 일깨워주고 싶어 베푸는 마음으로 하시는 일이라는 걸, 직(織)이 아닌 업(業) 으로 일하는 분이시라는 걸요. 우리만 괜찮다면 평일 저녁보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일요일 오전에 수업 시간보다 더 오래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며 휴일 출근도 괘념치 않아 하시는 멋진 직업인을 보며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어요. 제가 바쁜 일상에 끌려 다녀서 일까요? 자기만의 속도로 삶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채워가는 사람 곁에 있는 게 좋더라고요. 그게 우리보다 더 연배가 높으신 분이었을 땐,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이 되어 주는 것 같아 더더욱이요. 

제가 무언가를 자주 배우는 건, 처음에는 흔히 말하는 소확행이나 일상의 탈출구를 찾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가벼운 마음과 가벼운 엉덩이로 가죽공방, 꽃꽂이, 드롭 페인팅, 도자기, 운전면허, 전통차, 아로마공방 등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작년 즈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배움을 통해 얻은 가장 값진 건 사소한 행복도, 무언가를 배우는 설렘도, 커피를 내리거나 도자기를 만드는 스킬도 아닌 그분들과의 대화를 통해 배운 인생관이나 태도라는걸요. 생면부지의 타인과 삶에 대해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면 좁디 좁아 조급하고 빡빡했던 제 마음이 넓어지면서 빈 공간이 생기는 것 같더라고요. 답장을 쓰다 보니 알겠어요. 써니 마음의  빈 공간은 시간으로부터 나오지만 제 마음의 빈 공간은 누군가를 통해 넓어진 여백으로부터 나오는 거였어요. 무언가를 배우면서 그 속에 담긴 인생의 은유를 알아가는 건 덤이고요.

이를테면 우리가 지금 배우는 핸드드립에서는 커피를 내리기 전, 가장 먼저 하는 게 필터지를 적셔야 하잖아요. 린싱이라고 하죠. 그 다음은 본격적으로 커피를 내리기 전, 갈린 원두가루 위로 쪼르르 더운 물을 붓고 30초 간 뜸을 들이는 시간이 필요하고요. 뜸을 들인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잠깐 곱씹어보다 올해 초, 우리가 함께한 제주도 여행에서 들른 찻집 사장님과의 대화가 떠올랐어요. 차를 내릴 때도 처음 에는 찻잎을 가볍게 깨워주는 정도로만 우리고, 그 물은 마시지 않고 버리는 ‘세차’ 라는 과정이 있잖아요. 찻잎을 깨워주고 씻어주는 그 과정을 거쳐야 더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하셨었죠. 뜸이 필요한 커피와 차.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을 지을 때도 뜸을 들이는 과정은 꼭 필요하잖아요? 커피와 차, 밥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도 뜸을 들이는 즉, 공백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요? 써니는 저와 함께 뭔가를 배워봐서 잘 알죠? 어딜 가든 늘 저는 “메이씨, 성격 진짜 급하시죠?” 라는 말을 들어왔어요. 좋은 커피, 좋은 차처럼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뜸을 들이는 공백의 시간이 필요한 게 아닐까? 커피를 배우며 제가 얻은 깨달음이에요.

조급해질라 치면 뜸을 들여야 깊어지는 커피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어봐야겠어요. 곰돌이 빵집 선생님의 “메이씨! 아이~ 또 왜 그렇게 급해~~~하나!둘!셋! 이 아니고 하~~~~나~~~~ 두~~~울~~ 세엣으로 내려야 한다고 했잖아~.” 구수한 사투리 섞인 정겨운 목소리를 떠올리면서요. (웃음) 

지금도 내향인이긴 하지만 20대의 저는 친구나 지인 외에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하는 걸 꺼리는 편이었어요. 미용실에 갔을때나 쇼핑을 할 때 누군가 저에게 스몰톡을 시도하면 어색한 눈 웃음을 지으며 상대가 무안하지 않을 정도의 단답으로 대화를 마치려 했었죠. 30대가 넘어서부터 서서히 타인과 이야기를 즐기는 사람으로 변하는 중인 것 같아요. 무언가를 배우러 갔다가 그걸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더 큰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겠죠? 이런 배움들이 반복되면서 타인과의 경계를 허물어야 내가 더 깊어지고 넓어질 수 있구나! 몸으로 체득했던 것 같네요. 

이병률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어떤 사람과의 겹치고 겹치는 일들은 두 사람의 미래가 된다. 올해 많이 겹쳤는가.” 내 안에 작은 울타리를 쳐 놓고 울타리 밖 사람들과 겹치고 싶지 않았던 20대의 메이가 배운 건 30대의 메이가 배운 것보다 훨씬 작더라고요. 써니도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잖아요? 함께 낯선 이들과 대화를 하는 경험도 몇 차례 있었는데 그때 써니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해지네요 😊

PS. 참, 써니가 올해 초 처음 곰돌이빵집에 들렀던 날, 은비빵이 기억에 남아 포스팅을 했었잖아요. 사실 은비는 아이가 아니라 아내분의 성함이셨답니다. 빵 이름을 아내의 이름인 은비빵으로 붙이고 사람들이 “은비빵 있어요?” “은비빵 다 나갔어요?” 라고 물을 때 마다 기분이 좋으셨대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불려지니까요. 참 낭만적이죠?

매주 수요일 써니와 메이가 주고 받는 편지가 한 편씩 연재됩니다.

Brand Manager  I  May

💬꽃을 건넨 사람의 손에는 향기가 남는다. 

삶도 마음도 쓰는 게 좋은 사람. 순간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어 글을 씁니다. 5년째 마더스올의 브랜드팀을 리드하고 있어요. 이 곳에서 저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Brand Manager  I  Sunny

💬일상이 모여 행복이 된다.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를 담는 게 좋은 사람. 진심을 실어보내고 싶어 글을 씁니다. 4년 전 마더스올에 입사해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이 곳에서 저는 올맘님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브랜드의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