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도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여전히 첫째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일까? 1호를 임신한 순간부터 27개월이 된 지금의 성장 과정들이 기억 속에 한 장면, 한 장면 선명하게 남아있는 반면 이제 8개월이 된 2호의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핸드폰 속 사진이나 동영상을 봐야만 “아~맞아. 이렇게 작았었지.” 그때를 추억하곤 하는 것이다. 선명한 성장과정 만큼이나 첫째라는 존재는 엄마에게 그 의미가 깊다. 일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도 해도 무방할 임신과 출산. 생사를 오가며 새 생명을 잉태해낸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감격스러운지. 한편으로는 임신, 출산, 육아란 난생 처음 겪는 일이어서 지금껏 내가 살면서 축적해온 경험의 데이터가 무용지물이 되고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처음 느껴보기도 했다. 내가 애를 키우는 건지 애가 나를 키우는 건지 모를 만큼 많이 울고 웃고 애쓰고 다짐하고 감사했던 나날들.

물론 기억 속의 둘째의 성장 과정들이 희미하다고 둘째가 안 예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다. 하지만 첫째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으로 예쁘다. 첫째를 낳고 나서 처음 면회를 갈 땐,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엉엉 울기 바빴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가 눈물 때문에 흐릿해서 잘 안 보일까봐 눈물을 닦아내며. “나오느라 고생했어, 너무 힘들었지, 반가워, 잘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감격으로 부푼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둘째는 낳자마자 눈물은 커녕 마냥 웃기고 귀여운 것이다. 생긴 것도 귀엽고 우는 것도 귀엽고 그저 존재만으로 미소가 지어진달까. 아마도 한번 경험해봐서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겠지?

그렇게나 둘째가 귀엽고 예쁜데도 불구하고 양가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둘째에게만 온 관심을 쏟을 때면 나는 그렇게 화가 난다. 도대체 이게 무슨 감정일까. 첫째도 둘째도 모두 다 내 아들인데. 내 아들을 귀여워 해주는데 화가 나다니. 집에 부모님이 오셔서 둘째에게 애정이 집중되는 순간, 본능적으로 첫째를 살피게 된다. 첫째가 이 순간에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면밀하게 본다. 자기를 가장 좋아하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첫째에게 먼저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둘째를 너무 귀여워하는 걸 보면서 상황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둘째도, 둘째를 예뻐하는 양가 부모님도 미워지는 순간이다. 사실 그 분들은 둘째를 예뻐하는 것 이상으로 첫째를 예뻐했는데. 첫째는 그걸 모르니까 동생만 좋아하고 동생한테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할까봐 노심초사 한 것이다.

내가 장녀라 첫째의 입장에 더 공감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5살 터울의 내 동생이 너무 예쁘지만, 내 동생을 너무 예뻐하는 친척들 틈에 끼여 있을 때면 외롭기도 하고 어느 순간 머쓱하고 민망하면서 부끄러워지곤 했었으니까.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던 주연 자리에 있다가 갑자기 까메오 자리로 밀려난 느낌이랄까. 그런데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나는 내 부모의 첫사랑이었구나. 처음이라서 넘치는 사랑을 받았구나. 귀가 닳도록 들어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낳아보니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 첫째는 첫째대로, 둘째는 둘째대로 너무 사랑하고 예쁘다는 걸. 의미는 다르지만 똑같은 사랑으로 키웠다는 걸.

양가 부모님께 아직 둘째는 어리니 첫째에게 먼저 사랑을 표현 해 달라고 부탁 드리곤 한다. 그리고 자기 전에도 꼭 첫째에게 말해준다. 우리는 너를 너무 사랑한다고. 너는 너무나 특별한 존재라고. 동생한테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너는 너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사랑한다고.

동생이 태어난 후 형은 기다림이 잦아졌다. 빠릿빠릿하게 반응해주던 부모가 갑자기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많이 하고, 그 조금만이 어떤 때는 10초였다가 어떤 때는 10분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형은 동생에게 사랑을 뺏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부모가 동생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동생이 너무 좋은데 부모 때문에, 어른 때문에 동생이 미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내가 부모님께 가장 감사한 건 동생을 낳아준 일. 내가 쥐어 박는 건 괜찮지만 바깥에서 누가 내 동생을 괴롭히면 달려가서 욕을 퍼부어줄 수 있는 끈끈한 자매가 된 것처럼 나를 가장 잘 알고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준 부모님께 감사하다.

지금 우리 첫째는 동생과 가족이 되어가느라 이리저리 마음을 쓰고 있지만, 훗날의 나와 동생처럼 결국엔 끈끈한 친구 같은 형제가 되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첫째가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부모인 우리가 어떻게 양육을 해야 할 지 고민하고 대화하며 우리 가족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중이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여전히 두 아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이 마음이 첫째와 둘째 모두에게 가 닿기를 바라본다.

💬 제가 첫째라 이런 마음이 더 진하게 드는 걸까요? 막내나 둘째로 자란 맘님들의 마음도 궁금하네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