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아이들의 참새방앗간, 놀이터! 우리 집 1호도 그렇게나 놀이터를 좋아한다. 돌이 지나 아장아장 걷게 되면서 우리는 가까운 집 앞 놀이터에 가기 시작했다. 제 몸을 제대로 가누긴 커녕 걷는 것조차 어설픈 아이를 따라다니기 바빴던 때. 두 손과 두 발로 사족 보행을 하며 열심히 미끄럼틀에 오른 아이가 내려오며 행여나 다칠 새라 부리 나케 쫓아가 무릎에 앉혀 미끄럼틀을 내려가고, 왔다-갔다 하는 그네에 돌진해 부딪히진 않을까 얼른 안아 드는 등 지금보다 어렸던 첫 해의 놀이터는 참으로 분주했다.

둘째를 임신한 지 30주 쯤 되었으려나? 무거운 몸 이끌고 어찌나 아이를 따라다녔던지. 하필 계절도 여름이었다. 불룩한 배를 안고 원통형의 미끄럼틀에 들어가려 온 몸을 숙일 때가 참 힘들었다. 그런데도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마음껏 뛰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큰 맘 먹고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물론 막상 나간 후에 바로 후회를 하는 것 또한 반복이다. 만삭 때는 집에 안 간다고 울며불며 소리치는 1호를 옆으로 들쳐 메고 집으로 왔던 적도 있다. 그 때 마주친 사람들이 하나같이 놀라 동그래진 눈으로 남산 만한 내 배와 대성 통곡하는 1호를 번갈아 쳐다보곤 했었다.

그 해 11월, 둘째를 낳고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이 되어 다시 놀이터를 찾았다. 오랜만에 엄마랑 단둘이 나오기도 했고 워낙 좋아했던 놀이터니까 우리 집 1호는 신이 났다. 놀이터에는 그물로 된 징검다리가 있는데, 두 돌이 되기 전엔 뭣도 모르고 용감하게 지나가다가 이내 발이 폭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도 아이는 좋다고 까르르- 웃어댔다. 그러다 혼자 엎드려서 미끄럼틀을 타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니, 그 몇 달 사이에 이렇게 자랐다고? 무서움도 없이 이것저것 새롭게 시도하는 아이의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그리고 현재, 또 다시 계절을 돌고 돌아 선선한 가을을 코앞에 두고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갔다.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아이들의 성장을 체감하며 생각에 잠기는 때가 있는데, 이번 놀이터 데이트가 그러했다. 지금보다 더 아가였을 땐 다리가 빠져도 꺄르르- 웃다가, 조금 더 컸을 때는 무서웠던지 시도조차 하지 않다가, 이번에는 “엄마랑 같이!” 를 외치더니 내가 알려준 대로 그대로 따라하는 게 아닌가. 그리고는 몇 번이나 혼자 반복하며 성공을 뿌듯해 하더라. 너무 높아 못 올라갔던 곳도 손으로 봉을 잡고 다리를 팍 올리며 단번에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이 동작도 아이는 반복해서 시도했다.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리고 이젠 그네도 혼자 탈 수 있게 되었다. “엄마, 그네 탈래요!” “엄마, 그네 밀어죠!” 꽉 붙들라며 그네를 살살 밀어주면 “엄마, 엄마 타!” 같이 타자고 한다.

박자에 맞춰서 함께 그네를 타고 있으니, 해맑게 웃으며 . “엄마 무서워요?” 나를 향해 묻는다. “엄마는 무서워” 답해주니 “엄마 무서워? 그네 재미따!” 그러다 점점 그네가 느려질 때쯤 다시 엄마를 부른다. “엄마, 밀어줘요!” 이번엔 좀 더 세게 밀어줄까 싶어 힘을 더해 밀면 “그만, 그만 무서워요!” 라는 말이 돌아온다. 언제 이렇게 컸니. 나는 네가 이렇게 크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함께 발 맞춰 그네를 타며 바라본 내 첫째 아이의 환한 얼굴이, 그리고 그네를 꼭 잡은 야무진 두 손이, 이제는 너무나 길어진 두 다리가 갑자기 내 눈과 마음에 확 와 닿았다. 비로소 우리가 가장 어린 오늘의 아이와 매일 이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가 막 돌이 지났을 무렵, 바로 둘째가 찾아왔다. 첫째의 너무 예쁜 시절 한 토막이 입덧 기간에 그냥 지나가 버렸고, 임신과 출산을 거듭하며 내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첫째를 찬찬히 바라보지 못했다. 내 사진첩에 남겨진 첫째는 너무 아기였는데 어느새 살이 쏙 빠졌고, 엄마만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외계어로 의사표현을 하는 대신 문장을 구사하는 모습을 보며 갑자기 우울해졌다. 네가 크는 속도에 발맞춰 걷지 못한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동영상 속 어린 첫째를 만나 안아주고 싶었다. 둘째를 임신하며 바로 어린이집을 보내게 된 것도 새삼 미안해졌고 그래서 우리가 함께 추억을 쌓을 시간이 적었다고 생각하니 또 미안했다. ‘아, 이 시절로 돌아갈 수 없구나. 정말로 오늘이 우리 아이들의 가장 어린 순간이구나.’ 오늘 보는 내 아이의 모습이 마지막임을 기억하고 늘 최선을 다해 눈 속에, 카메라 속에 담아줘야지. 지나간 것을 붙잡을 순 없어도 추억 할 순 있으니까.

💬 일상 속에서 아이가 컸음을 깨닫는 순간, 기특한 한편 지금보다 더 아가였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고 빠르게 크는 아이의 속도를 엄마가 발맞춰 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함께 밀려오네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