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잠깐 방심하면 꼭 아프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선선한 가을날씨가 시작되며 설레는 마음에 첫째와 자주 바깥 나들이를 갔다. 키즈카페도 가고, 먼 지방에도 다녀왔으며 놀이터에서 2시간을 내리 뛰어놀기도 했다. 오랜만에 둘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이 그저 좋았다.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다시 월요일 오전 11시 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나 다를까, 고열이 난다는 것. 와중에 점심을 먹었는지 확인부터 하고 둘째가 낮잠을 자는 찰나 부랴부랴 첫째를 데리러 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는 3시간이나 낮잠을 잤다. 그저 잦은 외출로 피곤했겠거니 싶었다. 병원에 데려가니 목이 빨갛다고 하셔서 '목감기인가보다. 그래서 열이 났나보다.' 생각했더랬다. 

해열제를 먹고, 병원약도 먹고 하루 만에 열이 내렸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지 처음으로 등원을 거부했다. 워낙 어린이집 가는 걸 좋아하던 아이라 정말로 가기 싫은가보다 싶어 "그래, 그럼 오늘은 엄마랑 놀자!" 등원을 보류했다. 지금 생각하면 신의 한수였다. 

그 날 밤 아이는 다리를 벅벅 긁었고, 양쪽 다리에 수포가 잔뜩 올라와 있었다. 자면서 어찌나 긁었는지 이미 피가 터진 곳도 있었다. 그렇다. 그렇게나 피하고 싶었던, 여름 물놀이 할 때도 안 걸렸던, 그 수족구에 걸리고야 만 것이다. 감사하게도 목은 괜찮아서 밥도 물도 간식도 다 잘 먹었다. 문제는 그 다음 날, 둘째가 고열이 나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열이 잡힌 첫째와는 달리, 둘째의 고열은 3일 내내 지속되었다.

둘째가 태어난 이래 가장 많이 챔프를 먹었던 3일이었다. 열이 잡히면서 열꽃이 피었고, 아직 수포는 안 생겼지만 지켜보는 중이다. 두 아이가 아프면서 근 일주일 내내 함께 격리 아닌 격리 생활을 이어갔다. 걸음마를 시작한 둘째는 형아가 하는 거라면 모두 재밌어 보이는지 훼방꾼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뿐이랴. 잡고 일어설 때 형아 머리카락을 쥐고 일어서거나 갑자기 형아에게 다가가 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휘두른다거나 하는 일이 잦아졌다. 형아의 스트레스는 계속 쌓여갔고, 참아주다가 종종 터졌다. 울분을 터뜨리며 둘째를 확 밀어버리거나 콱 꼬집는 일이 많아졌다.

아주 잠깐, 둘이 잘 노는 모습에 설거지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들려오는 첫째의 비명과 둘째의 울음소리.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집안일은 가득 쌓였는데 첫째는 자꾸만 엄마와 함께 놀자고 떼를 쓰고 둘째는 계속 울었다. 게다가 개어르신 호두까지 합세해 쉴 새 없이 짖기 시작하니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구인지(···) 멘탈이 탈탈 털리고야 말았다. 

하필 아이들이 아픈 일주일은 남편의 일이 바쁜 월말이었다. 아침 일찍 출근해 아이들을 재울 때가 되어서야 퇴근을 했으니 그야말로 독박육아의 주간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자는 동안에도 나는 두 아이와 한 몸이었다. 아픈 아이들은 엄마 껌딱지가 되었고, 오랜만에 초우량아 둘째를 아기띠로 업고 설거지를 하며 1호랑 놀아주려니 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아이들이 잠들어도 끝이 아니었다. 둘째는 중간중간 잠에서 깨 울면서 엄마를 찾고, 첫째는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엄마를 찾고. 양 옆에 애들을 끼고서 오른쪽 달래고, 왼쪽 달래고를 반복하고 있으려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느 날은 부엌 한 귀퉁이에서 아이들 눈에 안 보이게 쪼그려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원샷했다. 그 짧은 1분도 얼마나 큰 휴식처럼 느껴지던지. 정말이지 분리되고 싶은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독박육아의 가장 위험한 것, 바로 육아스트레스가 쌓이며 엄마의 감정 조절이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웬만해서 짧게 훈육하고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용납할 수 없는 것들로 둔갑하고, 울분을 터뜨리게 되고, 언성을 높이며 한숨을 자주 쉬게 되었다.

불과 오늘도 약을 먹이던 중 자제력을 잃고 "이노옴!" 소리가 나왔다. 아이들도 이제 약 먹는게 질렸던지 오늘따라 거부가 심했다. 둘째는 어찌저찌 억지로 먹였는데, 부쩍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많아진 첫째는 기다려줘야 했다. 그런데 약을 바닥에 뿌리며 노는 모습을 보고 자제력을 잃고 결국 강제로 약을 먹이고야 말았다. 아차, 내가 심했나 싶어 아이를 달래며 "억지로 먹여서 미안, 놀랬지" 하니 바로 울먹이며 "놀래떠" 란다. "엄마가 이놈 해떠. 놀래떠. 무서워뗘" 부연 설명까지(···)

어찌나 부끄럽고 미안하고 속상하던지. 나는 오늘 또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예전에는 일방적인 사과였는데, 이제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니 더 부끄럽다. 계속해서 놀랐다고, 무서웠다고 하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착잡했다. '내 아들이라고, 아기라고, 강압적으로 대한 건 아닌가.' '나는 왜 이렇게 불같이 화르륵 하는지…' 매번 마음을 다 잡지만, 매 번 잘 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나날의 반복이다.

특히나 첫째에게 내 감정을 다 쏟아 붓는 것 같아 돌아서면 미안하고 돌아서면 후회가 쌓여간다. 나는 오늘도 미성숙한 엄마였다. 그리고 남편이 상당 부분 함께 육아를 하고 있었다는 점을 깨닫는다. 심적으로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다는 걸, 육아는 우리 부부의 공동의 과제라는 걸 부재를 통해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남편과 함께라면 더 신경 쓰이고 귀찮은 것들이 많아지기도(?) 하지만.)

지금도 독박육아를 하고 있을 모든 엄마들의 등을 토닥여주고 싶다. 비록 지금은 단 5분의 커피수혈이 절실할만큼 힘들지만, 이 순간도 다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는 걸. 그러니 다시 힘을 내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의 육아를 이어가보자고.

💬 그야말로 어마무시했던 한 주였어요... 🤣 화내고 사과하고 반성하고, 이런 매일의 반복이 복리처럼 쌓이면 한 뼘 더 자란 엄마가 될 수 있을까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24개월 1호와 5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