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면서 강아지 까지 키우는 거 힘들지 않아요?” “강아지는 다른 데 보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반려견 혹은 반려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듣는 말이 아닐까. 나 또한 결혼 후 이런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동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가족인데. 결혼을 해서 새 가족이 생긴다고, 원래 내 가족을 도대체 어디로 보내랴. 목 끝까지 차오른 착잡함은 삼켜 버리고, “호두는 가족이에요.” 라고 대답한다. 

2015년 3월 호두는 우리 집 막내가 되었다. 한 살 남짓 어린 나이에 파양의 아픔을 겪은 호두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집이 우리 집이 되었다. 치와와 믹스라 코가 찡- 눌려서인지 “종이 뭐에요?” 라는 질문을 종종 받고, 성격은 아주 까칠하지만 오래 본 가족들에게 만큼은 애교가 많은 아이. 극세사 담요를 너무 좋아해서 겨울만 되면 코만 빼-꼼 나오도록 담요와 혼연일체가 되는 영원한 우리 집 막내 박호두.

호두는 치열하고 힘들고 슬프고 절망적이고 외로웠던 20대의 그 모든 순간에 항상 곁에 있어준 유일한 존재였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다 버겁게 느껴지고 가족에게도 상처를 줄 수 밖에 없었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작게 느껴지던 시절 내게 유일한 위로였다. 펑펑 우는 내 옆에 묵묵히 등을 기대고 눈을 꿈뻑 꿈뻑 거리며 나를 핥아주던 호두.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도 호두를 붙잡고는 미주알 고주알 털어 놓을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호두의 존재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컸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결혼을 했고, 자연스레 호두도 신혼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신혼집에서 자던 첫 날, 처음으로 호두와 떨어져 잤다. 그게 어찌나 이상하고 슬프던지. 호두는 항상 내 품에서 함께 자곤 했었는데, 사실 그 때문에 둘 다 숙면을 취하지는 못했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은 익히 알겠지만 항상 잠자리의 정중앙은 강아지의 몫이지 않는가. 혹여라도 호두가 나에게 깔리진 않을까 내 몸은 최대한 가장자리에 붙어 자곤 했는데, 초 예민 까칠 겁쟁이 호두는 내가 자다가 다리를 무심결에 옮기기라도 하면 놀라서 내 다리를 앙- 물기도 했다. 그럼에도 십 여년의 세월동안 우리는 한 이부자리에서 동고동락했다. 처음으로 우리가 떨어져 자던 날, 왜 나는 함께 있을 수 없냐는 듯 안방 문 너머로 들려오는 호두의 울음소리를 애써 외면하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나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분리 수면 덕분에 호두도 나도 비로소 숙면을 취할 수 있었는데, 그땐 왜 그리 마음이 텅 빈 것 같고 거실에 호두를 홀로 두고 온 것만 같았는지.

그리고 얼마 후, 첫째를 임신하게 되었고 연달아 둘째까지. 3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렸고 아이가 자란만큼 호두는 늙어갔다. 정신없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동안 자연스레 호두는 뒷전이 되었고,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호두는 늘 기다려야만 했다. 결혼 전에 비해 함께 있는 시간은 많아졌지만 온전히 호두만 바라보아 줄 수 있는 시간은 훨씬 적어진 것이다. 둘째는 아직 배 속에 있고, 첫째가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가던 날. 17개월 만에 호두와 단 둘이 있는 시간이 생겼다. 거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아래 털썩 옆으로 누워 볕을 쬐는 호두가 참 고단하고 짠해보였다. ‘너도 아이가 없으니 그제서야 마음 편히 쉬는구나, 여태 나와 함께 육아를 해왔구나.’ 싶더라.

그리곤 3개월만에 또 갓난쟁이가 나타났으니. 본의 아니게 노년에 육아를 시켜 미안하다. 호두는 두 아이가 모두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그제야 거실 한 중간에서 털썩 누워 쉬다가, 아이들이 하원하면 안전을 위해 다시 거실 한 켠의 호두의 공간으로 분리된다. 두 아이들이 조금만 더 커서 호두를 조심스럽게 대할 수 있다면 격리되지 않아도 될 텐데 (···) 그런 시간을 속수무책 기다리다 보면 호두는 그만큼 늙어가니 속상할 따름이다.

아직은 어려서 자신을 귀찮게만 하는 아이들보다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는 호두를 위해 틈틈이 산책도 가고, 호두가 좋아하는 극세사 담요를 함께 덮고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내곤 한다. 두 아이의 성장 과정에 늘 함께였고 고단한 육아의 끝, 호두를 꼭 끌어안고 꼬순내를 맡으며 위로 받던 순간들이 있었다. 호두의 온기에 기대 마음을 데우던 시간들이 있었기에 남편과는 또 다른 의미로 나의 육아동지가 아닐까.

육아라는 두 글자로 가득 찬 지난 3년이 호두에게 외롭게 늙어간 시간으로 기억되진 않을까 마음이 아프다. 늘 곁에 있었주면 좋으련만 강아지들의 시간은 사람보다 한참 빠르다는 사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애개육아는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방법을 찾아가려 애쓰고 있다. 어려운 순간도 많지만 함께 하는 모든 시간들에 감사하며, 조만간 둘이서 항상 갔던 산책길 그 공원에 함께 가보아야 겠다.

(호두 좀 그만 괴롭혀라 얘들아..)

💬 뽀뽀하느라 물린 지금.. 이 글을 쓰는 게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ㅎㅎ) 세상 모든 강아지들의 시간이 조금만 더 천천히 흐르기를 바라며 저희 집 호두 어르신의 이야기를 담아보았어요. 저처럼 지금 반려동물과 함께 육아를 하고 있으신 올맘님들은 육퇴 후 네 발 달린 친구들 꼬옥 한 번 안아주자구요💖 지금은 함께 하지 못하지만 지난 시절에 반려동물과 함께했던 경험이 있으신 올맘님이 계시다면 따뜻했던 그 날의 추억을 떠올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