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더니. 어느 새 내 말투, 억양, 표정을 마치 복사기로 찍어낸 듯 똑같이 구사중인 첫째를 보며 놀라고 있다.

“선호! 이노옴- 한다아?!!”

둘째를 향한 첫째의 말에 머리를 댕- 하고 맞은 것 같다가, 이내 빵 터졌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우리집 둘째는 형아가 하는 모든 것에 태클을 건다. 형아가 기차놀이를 하고 있으면 기찻길을 부수고, 블록을 쌓고 있으면 와르르 무너뜨리며, 공룡과 자동차를 줄 세워놓고 있으면 깔고 앉아 뭉개버린다. 그리고 꼭 형아가 앉아 있으면 그 위에 앉고, 형아가 누워 있으면 그 위에 드러눕는다. 첫째는 늘 “엄마! 선호가 뺏어가요!” “엄마! 선호 데려가요!” “엄마!!!! 무너졌어요!!!!” 라고 외치고, 아직 말을 못하는 둘째는 괴성을 지르기 바쁘다. 꼭 둘 중 누군가가 울음을 터뜨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첫째가 엄마를 부르고 나서, “선호! 이노옴- 한다아?!!” 둘째에게 한 마디를 덧붙이기 시작했다.

대부분 두 아이가 함께 놀 때는 내가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집안일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 상황을 대충 마무리하고 싶어 둘째에게 이노옴-! 했던 게 이렇게 첫째를 통해 드러난 것이다. 내가 지었던 표정 그대로 온 미간을 찌푸리고, 입을 양껏 모아 쓰읍! 이노옴! 하는 모습이 내가 봐도 나 같아서 어이 없고 신기하고 희한했다. 내가 이런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줬구나.

둘째를 달래주는 첫째의 모습에서도 여지없이 내 모습이 비친다. 나는 옛날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을 달랠 때, “오야~ 오야~” 우쭈쭈하며 달래주는데, 그걸 어느새 첫째가 따라하고 있더라. 둘째가 본인 때문에 울 게 될 때, 꼭 그렇게 달래 준다. 모르고 동생을 밀쳤다던가,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동생이 있는 걸 보지 못하고 휘두르다가 동생이 맞았다거나 아니면 화가 나서 동생을 확 꼬집었다던가 하는 이유들로 동생이 뿌에엥- 하고 울음보를 터뜨릴 때 말이다. 엄마가 오기 전에 동생의 울음을 얼른 그치게 하고 싶은 조급한 마음은 33개월 아기도 똑같은 걸까? 참으로 귀엽고 우스울 따름이다.

그 뿐 아니라 우리 집 개 어르신 호두를 대하는 첫째에게서도 내 모습이 묻어난다. 호두가 왕왕 짖을 때면 갑자기 뛰어가서 “호두- 안돼에!” 라고 외친다거나. 호두는 배변판에 쉬를 하면 간식을 받아 먹는데, 그걸 아는 첫째가 “엄마! 호두 간식 줘요!” 라며 간식을 가지고 가 호두 앞에서 “앉아! 기다려!” 를 외친다거나. 사실 호두는 훈련이 잘 된 편이 아니라(?) [호두 앉아▶호두 손▶엎드려▶기다려▶먹어] 5가지 순서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 말도 듣지 않는다. 이걸 모르는 첫째는 순서를 건너 뛰고 앉아! 와 먹어! 만 외치고, 그 말을 따를 리 없는 호두를 보며 시무룩하게 간식을 던지곤 한다.

오늘은 밤잠을 재우기 전, 첫째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침대에서 신나게 점프를 하고 자고 싶다고 하여 그러라 했는데, 침대에서 점프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침대에서 바닥으로 점프를 한다는 말이었다. 즉시 나는 그만 뛰라고 소리를 질렀고, 아이는 무시했다. 두 번째로 침대에서 바닥으로 점프를 할 때, 누워있던 둘째 얼굴을 밟아 둘째가 자지러졌고 나는 진심으로 소리를 질렀다. 결국 첫째도 대성 통곡을 했다. 그렇게 불을 끄고 자려고 누우니 꼭 깜깜한 방이 내 마음 같았다. “선준아~ 아까 엄마가 소리 질러서 너무 미안해.” 진심을 담은 엄마의 사과에 갑자기 첫째가 소리를 꽥! 지르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한 마디를 덧붙였다. “엄마가 그랬지.” 부끄러웠다. 남편은 그냥 웃고 말았고, 나도 사실 웃겼지만 마음 한 켠이 서늘했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된댔는데, 왜 이렇게 감정이 앞서는 걸까. 글을 쓰며 돌아보니 아이가 나의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닮아가는 것 같다. 어쩌면 그런 것들이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어린이집에 다녀온 첫째에게 “너무 보고 싶었어.” 라고 말했던 것이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라고 되돌아 오는 걸로, 밤마다 귀에 대고 했던 “선준아, 사랑해” 라는 말이 “엄마, 사랑해.” 로 되돌아오는 걸로 조금은 위안을 삼아봐도 될까.

부모가 아이의 거울이라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지만 엄마의 사랑도 그대로 담아 보여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되려 감사하기도 하다. 아이를 통해 나를 보고, 또 나를 통해 아이를 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 된다. 어쩌면 우리는 아이라는 거울이 있어 매일 한 걸음 성장해 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내일은 더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도록 노력해야지! 제발 엄마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아줘 아이들아… ^^

💬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을 고대로 따라하는 아이들! 저처럼 머쓱- 하거나 무서웠던 경험 다들 있으시죠? 댓글로 함께 나눠보아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