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니, 벌써 겨울의 끝자락 2월에 다다랐어요. 코 끝 시리는 바람은 여전하지만 2월은 겨울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살짝 들뜨곤 해요.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주는 설렘이죠.

작년 연말부터 우리가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이벤트를 준비했잖아요.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생일은 일 년 365일 중 딱 하루 뿐인데, 생일이 아닌 날도 생일처럼 즐거울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일이 아닌 날도 일상 속에서 사소한 나만의 기념일을 찾아서 기념한다면 보다 즐거울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의 포인트는 사소함 인 것 같아요. 저는 행복의 주체가 '나'가 되어야 우리가 더 자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누군가 나를 위해 편지나 선물을 건네주며 축하해주는 마음 또한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행복이지만 언제든 내가 원할 때 행복해질 수 있게 사소하고 쉬운 일상 속 장치들이 있다면 더 자주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만의 일상 속 기념일 일명 군탈출데이(…) 를 소개할게요. (웃음) 그러자면 결혼과 동시에 달성군으로 이사를 가게 된 이야기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결혼을 준비하며 난생 처음 달성군에 발을 들이게 되며 저는 군민이 되었어요. 계획형 신도시라 지금은 아파트가 끝없이 늘어져 있지만, 십 여년 전만 해도 이 곳은 허허벌판이었대요. 저희 아파트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고, 동네 조깅을 하다 보면 옥수수 밭도 볼 수 있고,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계절이면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낭만을 품은 곳이랍니다. 마치 앞면은 도시, 뒷면은 시골 한 장에 합쳐 놓은 것 같달까요. 편의 시설은 조금 부족하고, 문화 시설은 많이(…) 부족하지만, 자연을 좋아하는 저는 금세 이 곳이 좋아졌어요.

그래도 가릴 수 없는 단점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대구 어느 곳을 목적지로 찍어도 차로 40-50분은 족히 걸린다는 것. 심지어 저는 뚜벅이잖아요. 수도권과 달리 작은 도시라 결혼 전에 살던 집에서는 지하철을 타든 택시를 타든 대부분 20분 이내로 이동할 수 있어서 이사 후 불편함을 더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약속이 잡히면 ‘끝나고 집 가면 몇 시지?’ 도착 시간을 먼저 셈하게 되고, 꼭 필요한 약속이 아니면 점점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던 식당과 커피숍들과도 자연스레 멀어졌고요.  안 그래도 집순이가 점점 더 집순이가 되어갔죠.

작년 9월 어느 날, 결혼 기념일을 겸해 오랜만에 군 밖으로 나갔는데 괜시리 기분이 좋더라고요. 나가는 건 귀찮은데, 막상 나가니 생기가 도는 느낌이랄까요. 도시에 상경한 시골쥐가 된 심경으로 남편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오..!! 이런 곳도 생겼네?!” “와, 저거 좀 봐봐!!” 라며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더랬죠.

사실 제가 갇혀 있는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야 있지만 일상을 살다 보면 나중에, 다음에 하면서 내 기분을 위해 하는 일들은 뒤로 밀리기 마련이잖아요. 군탈출데이라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번, 평일 저녁 퇴근 후 세 시간 남짓의 외출만으로도 충분히 일상의 환기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군탈출데이를 입 밖으로 꺼내 부르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답니다. (웃음) 기념할 수 있는 다른 기념일도 많지만 군탈출데이가 어딘가 모르게 제일 우습고 정감이 가요. 왜 그런고 하면 다른 날에 비해 사소하게 느껴져서 인 것 같네요. 결혼기념일처럼 거창한(?) 기념일이 다가올 때면 기대를 하게 되고, 기대하면 또 실망을 하는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잖아요. 또 이 날을 어떻게 하면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까? 신경 쓰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하고요. 한 달에 한 번, 두 세 시간 남짓 각자 별다른 준비(?) 없이 군 밖에서 저녁이나 한 끼 하자! 딱 이 정도의 사소함이 저는 좋은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희 부부의 비결이라니 질문이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요? 왠지 오늘 편지는 길어질 것 같아요.(웃음) 저희 부부가 남들에 비해 잘 안 싸우는 편이긴 한 것 같은데, 그렇다고 또 잘 맞는 부부냐 하면 그건 절대로 네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써니도 알다시피 성격도 취향도 어쩜 이렇게 극과 극일까 싶을 정도로 교집합이 하나도 없잖아요. 어느 정도로 다르냐면 우스갯소리로 눈 앞에 2개의 선택지가 있을 때, 내가 A를 골랐으니 남편은 B를 좋아하겠다 라고 생각하면, 백발 백중 저와 다른 선택지를 택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웃고 넘겼는데 뭘 하든 이 지경이니 나중엔 서글퍼지기도 하더라고요. 어쩜 이렇게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까, 어쩜 이렇게 좋았던 내 기분을 찬물을 끼얹는 것 마냥 순식간에 가라앉게 만들까? 서로의 다름에 좌절했던 적도 많아요. 물론 제가 그랬던 만큼 상대방도 그랬겠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적은 횟수로 다투며 나름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해봤어요. 아무래도 함께 살면서 ‘체념’ 과 ‘타협’ 을 거쳤기 때문인 건가? 틀린 말은 아닌데 체념과 타협과는 비슷하면서 뉘앙스가 조금 다른 느낌인데, 이걸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심리학 교수님께 고민 상담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요. 써니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들려주고 싶어요.

“선생님, 저는 남차친구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요. 성격부터 취향, 관심사, 가치관까지 너무 다른데 또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많이 싸우는 편도 아니고요. 근데 이렇게 다른 저희가 오래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나중에 가서 엄청 크게 싸우면 어쩌죠?”

“사람들은 보통 사이가 좋다라는 말을 화학적인 관계로만 해석해요. 저 사람과 내가 마치 같은 원소로 구성되어 있고 좋은 화학 반응을 할 수 있어야만 ‘친하다’ , ‘사이가 좋다’ 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저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즉, ‘우린 다르잖아. 그러니까 화학적으로 결합하기가 어렵다면 물리적으로 서로 한 번씩 주고받자’ 라는 마인드가 필요한거죠. 절대 거창한 게 아니에요. 예를 들어 여자친구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나는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요. 그렇다고 된장 떡볶이나 떡볶이 찌개를 만들 수는 없지 않겠어요? 그땐 떡볶이 한 번, 다음에 된장찌개 한 번이 국룰이죠. 그러니 서로 다른 것을 무조건 화학적으로 묶으려 하면 안돼요.그건 균형이 아니에요.”

제가 알기로 써니 부부도 저희 만큼이나 공통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은 부부 같은데요. 교수님의 대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제가 과거에 그토록 좌절했던 이유가 나와 너무나 다른 사람을 앞에 두고 화학적인 결합을 기대했기 때문이고, 지금 그래도 사이 좋게 잘 지내고 있는 이유를 꼽아보자면 물리적으로 결합하자! 는 인식의 전환 덕분인 것 같거든요.

작년 여름 매거진 속 청결에 관해 극과 극이라 청결조약을 맺고 살아가는 저희 부부의 이야기처럼, 청소를 할 때 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을 때도 무언가를 할 때 늘 우리는 너무 다른 사람이기에 퐁당퐁당의 법칙을 적용하면서 살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써니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을까요? 🙂

써니는 일찍 결혼해서 저보다 훨씬 더 부부 연차가 높잖아요. 사실 오래 전 제가 미혼 이었을 때, 써니 부부가 너무 자주 싸워서 사이가 좋지 않은가? 저렇게 많이 싸우면 어떡하지?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오래도록 써니 부부를 지켜보니 참 신기한 게 정말 자주 싸우는데도 불구하고 사이가 좋더라고요. 이것도 비결이라면 비결이 있겠지요? 이번에는 써니 부부의 비결을 들려줄 차례에요! 😊

From. 써니 부부의 비결이 궁금한 메이로부터

· 메이 부부의 청결조약 이야기 [그 해 여름 우리는] 읽으러 가기

매주 수요일 써니와 메이가 주고 받는 편지가 한 편씩 연재됩니다.

Brand Manager  I  May

💬꽃을 건넨 사람의 손에는 향기가 남는다. 

삶도 마음도 쓰는 게 좋은 사람. 순간의 아름다움을 붙잡고 싶어 글을 씁니다. 5년째 마더스올의 브랜드팀을 리드하고 있어요. 이 곳에서 저는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을 잇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Brand Manager  I  Sunny

💬일상이 모여 행복이 된다.

이야기를 찾고 이야기를 담는 게 좋은 사람. 진심을 실어보내고 싶어 글을 씁니다. 4년 전 마더스올에 입사해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어요. 이 곳에서 저는 올맘님들의 이야기를 마음으로 듣고 브랜드의 진심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