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생기기 전, 내 사랑과 시간을 쏙 앗아간 존재가 있었다. 바로 사촌 언니의 아들, 나의 첫 조카 김주안. 벌써 첫 조카는 9살이 되었고, 둘째 조카는 6살이 되었다. 두 아이가 이모집에서는 엄마, 아빠 없이도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처음으로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1박을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들 넷 체험. 사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가, 언니가 두 조카를 집에 데려다 주고 가니 그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여덟 개의 눈동자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1박 2일이 과연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이모와 함께 하는 즐거운 1박 2일을 위해 미리 집 근처 자연휴양림 캠핑장을 예약해두었다. 남편은 일하는 와중에 두 조카에게 줄 레고 선물과 텐트 안에서 함께 할 보드 게임도 준비해주었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준비해준 세심한 남편에게 참 고마웠다. 남편 혼자서도 충분히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지만, 초등학생이 된 조카가 이모부와 함께 텐트를 치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 같아 둘을 먼저 보내고 나는 세 아이들을 챙겨 후발대로 출발했다. 무탈히 텐트 세팅을 마친 후 다음 코스는 저녁 준비! 아무래도 요리를 하는 건 무리일 것 같아 음식을 사온 게 신의 한 수였다. 우리 집 둘째가 복병이어서 이 아이 하나만을 케어하는 것으로도 진이 다 빠졌다. 

혼비백산인 나와 달리 오히려 조카들은 의젓했다. 자그맣던 큰 조카는 야무진 손길로 자기 겉옷 뿐 아니라 동생 겉옷도 착착 개서 텐트 한 구석에 정리해두고, 세 동생들을 이리저리 챙겼다. 정신없이 저녁을 먹고, 재밌게 보드 게임도 하고 난 후 날씨가 추워 야외 취침까진 무리일 것 같아 집으로 돌아왔다. 씻기고 잘 준비를 마쳤건만 잘 생각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아이들(…) 마지막까지 신나게 놀고 10시가 넘어서야 아이들은 잠자리에 누웠다. 두 조카가 침대에서 자지 않겠다고 해서 나와 첫째는 침대, 그 아래에서는 두 조카, 남편과 둘째가 옆 방으로 잠자리 배정을 마쳤다.

그런데 첫째가 무조건 큰 형아와 자겠다고 대성통곡을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침대에 첫째, 나, 큰 조카 셋이 눕게 되었고 둘째 조카는 밑에 혼자 있게 되었다. 큰 조카에게 첫째가 잠들면 밑에 바로 내려가도 된다고 말은 했지만, 막상 누워보니 침대에서 두 조카가 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밑에 혼자 있는 둘째 조카가 불을 끄자 조금 무서워했는데 침대에서 자면 덜 무서워 할 것 같았다. 

‘선준이 잠들면 바로 이모가 밑으로 내려갈게~’ 열심히 첫째를 재우던 중, 둘째 조카가 무서웠던지 계속 형아를 찾았다. 첫째를 재우느라 자는 척을 해주던 큰 조카는 동생에게 귓속말로 ‘주현아, 이모가 선준이 잠들면 자리 바꿔준대. 조금만 기다려.’ 둘째 조카는 형아 말을 듣고 얌전히 자리에 돌아가 기다렸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 아빠 없이 재밌게 놀았지만 잠들 때는 엄마, 아빠 품이 그립고 무서웠을테지. 불안해 하는 동생을 달래주는 형과 그 말을 믿고 기다리는 동생의 모습에 마음이 찡했다. 이모가 제 동생보다도 어린 동생을 재우는 걸 보며 자는 척을 해주고, 제 동생을 안심 시켜 줄 수 있을 만큼 든든하게 자란 주안이. 우리 언니가 육아 하느라 그리 힘들었어도 둘 낳길 잘했다, 아이들을 참 잘 키웠다 싶었다. 서로를 의지하는 두 형제의 모습을 보며 우리 집 두 형제의 미래도 슬며시 그려보았다. 그래, 나도 너무 힘들지만 둘 낳길 잘했지. 아직은 먼 미래 같지만 엄마만 찾던 너희들도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나 사회로 나아가겠지. 와중에 형아의 존재가, 아우의 존재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 지 살짝 엿보고 온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여동생이 있어 힘들었던 시간을 무사히 건너올 수 있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추억으로 바꿀 수 있었던 건, 홀로 인내하고 이겨낸 나 자신이 아니라 늘 함께해 준 동생의 존재 덕분이었다. 앞으로 이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의 둘도 없는 친구, 둘도 없는 내 편이 되어준다면 두렵고 어려운 경험들도 용기있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셋, 넷, 다둥이 엄마들은 육아가 더 힘들겠지만 훗날을 생각하면 얼마나 든든할까. 그래도 아들 넷은 좀 아닌 것 같다……. 정말이지 나의 혼이 아주 쏙 빠지는 1박 2일이었다.

💬 훌쩍 큰 두 조카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찡- 했던 1박 2일이었어요. 아직 저희 집 아이들에게 그런 걸 기대하기에는 너무 이른가봐요. 괴성과 눈물로 가득한 우당탕탕 율리아네 두 형제들 🤣🤣 형제 자매 남매를 둔 다둥맘네 풍경이 궁금해지네요☺️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