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베이비로 첫째를 가지고 연달아 둘째를 임신하며 결혼과 동시에 육아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천천히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이 늘 아쉬웠다. 이를테면 시어머니와 거리감을 좁히는 과정, 장인 장모와 가까워지는 과정,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부부 사이에 지켜야 할 것들을 습득해가는 과정을 건너뛴 채 바로 육아 모드로 돌입한 것이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날뛰는 호르몬 때문에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날이 많았다. 마음이 파도처럼 왔다 갔다 너울치기 일쑤였고 돌아서면 웃고 돌아서면 우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그 시절 나는 시어머니의 말들에 자주 상처 받곤 했다. 우리 어머님은 생고기 가게를 운영하시고 본래 성격도 화통하셔서 뒤끝은 없으셔도 돌려 말하는 법이 없으시다. 

나도 돌려 말하는 것보다는 직구로 말하는 게 편한 사람이라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출산을 하고는 도통 그러려니 넘기기가 어려웠다. “야는 더 많이 먹어야겠다.” 입이 짧아 또래보다 마른 첫째를 향해 하는 말이 꼭 나에게 밥을 안 챙겨 먹이냐는 말처럼 다가왔고, 어린이집 학대 사건을 보며 “어린이집에서 선준이 때리는 건 아니제?” 라는 노파심 어린 의심도 “웬만하면 집에서 엄마가 애를 보지.” 라는 말처럼 다가왔다.

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상처가 차곡차곡 쌓이며 못되게 되받아 칠 때도 있었고,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해 싫은 티를 종종 내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이 달려와 중재를 해주곤 했는데, 그의 중재는 득이 될 때도 실이 될 때도 있었다.

지난 가을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낸 후 드디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6시간의 자유 시간 속에서 집안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 책도 읽으며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었고, 문득 홀로 사시는 시어머니 생각이 나 이번 설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하룻밤 자고 와야겠다 싶었다. 어머님께 자고 가겠다고 말씀 드리니 본디 성격대로 좋은 티를 내시지는 않았다.

그런데 어머님 댁에 도착해 냉장고를 열어보고는 마음이 짠해지고야 말았다. 항상 식사는 가게에서 알바생들과 함께 드시고, 집에서는 커피만 마시는 터라 늘 어머님의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오늘 열어본 냉장고 속엔 과일이며 요플레며 한우와 갖가지 반찬들로 가득했다. 손주들이 자고 간다는 게 이만큼 기쁘셨던 게다. 고작해야 저녁과 다음날 아침 겸 점심 두 끼만 먹고 갈 텐데 냉장고 속엔 며칠은 족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랑이 가득한 어머님의 밥상을 나눠 먹고 아이들을 재운 뒤, 야식타임을 가졌다. 생각해보니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어머님 댁에서 잠을 잔 것도, 어머님과 남편과 셋이서 나란히 야식을 먹으며 편안히 대화를 한 것도. 4년 만에 그제야 가족이 된 것 같았다.

시어머니는 늘 멀게만 느껴지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만 생각했었다. 귀여운 손자 둘을 낳고도 그저 아이들의 할머니일 뿐이라고, 그 속에서 나는 객식구처럼 느껴졌었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득 찬 냉장고를 보고 밥상을 함께 나눠 먹고 나서야 아이들의 할머니인 것이 곧 내 가족과 다름 없음을 진심으로 깨닫게 되었다. 처음으로 어머님 댁에 자보며 가게를 마친 후 남들보다 늦게 퇴근해 홀로 맞이하는 새벽이 얼마나 외로울지 겪어본 하루였다. 3살, 4살 한창 에너지가 넘치는 손주들 때문에 잠 한 숨 못 주무시고 바로 아침을 차려 주셨지만 어머님의 얼굴은 피곤함은 커녕 행복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님을 향한 오해가 이해로 바뀌게 된 밤이었다.

남편과 어머님은 아이들을 키우며 내 감정을 먼저 앞세워 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고 말했던 나를 한 번도 지적한 적이 없었다. 그러려니 잠자코 있어 주신 어머님도, 언제나 내 편을 들어주었던 남편에게도 고마웠다. “아이 둘 낳고 키우느라 힘들지, 고생 많다.” 이 한마디면 되는데 왜 그리 어머님은 서운한 말씀만 하시냐고 내내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더랬다. 사실 어머님은 어머님의 방식대로 마음으로 묵묵히 나를 응원해주고 계셨는데 말이다. 너무 늦게 그 사실을 깨달아 새삼 죄송스럽고 또 감사했다.

결혼 4년 차, 이제야 남편과 나는 서로의 부모님이 너희 엄마·아빠가 아니라 우리 엄마·아빠가 되어 가는 과정을 겪고 있다. 물론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와 똑같을 수는 없다. 둘도 없는 아이들의 할머니고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어머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똑같은 마음과 사랑으로 남편을 키우셨겠거니 같은 여자로서 그리고 같은 엄마로서 유대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첫째보다 둘째를 더 좋아하시는 모습이 그렇게 서운했었는데 이제는 짠하기만 하다. 남편의 어린 시절과 너무나도 똑같은 둘째의 모습을 보며 어렸던 아들과 젊었던 자신의 옛 시절을 떠올리시겠지 싶어서.

여전히 나와 결이 맞지는 않지만 이제라도 어머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며 나 역시 한 뼘 자란다.

💬 오해가 이해의 일종이듯 이해도 오해의 일종이라는 말이 있대요. 내 입장에서 상대를 헤아리는 게 사실은 그 사람 입장에서는 오해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나 아닌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 저 역시 시어머님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겠죠? 하지만 오해하다보면 언젠가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면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나저나 맨 마지막 사진 좀 보세요 ㅋㅋ 남편의 어린 시절인데 둘째랑 너무 똑같지 않나요?! 유전자의 신비란...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