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구)남친 (현)남편과 데이트할 때, 두 손을 맞잡고 걷기에도 꼭 붙어 있기에도 추운 겨울이 더 좋았으니까. 그리고 겨울이면 더 새하얘지는 피부 덕분에 내 모습이 그나마 더 예뻐 보인 달까… ^_^; 브라를 하지 않고 외투로 가리고 후다닥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수도 있고, 불어난 몸을 가리기에도 제격인 겨울. 뜨끈한 찜질방의 묘미와 추운 캠핑장에서 호로록 건져 먹는 라면의 맛도 빼놓을 수 없지! 이 모든 것이 내 몸뚱이 하나만 건사하면 되었을 때,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겨울의 즐거움이었다. 엄마가 된 지금, 나에게 겨울은 외출 전쟁의 계절이다.

육아맘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겨울에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을 하려면 정말이지 너무 너무 힘들다. 칼바람을 조금만 쐐도 감기에 걸리기 일쑤이기에 아이들을 무장시켜야 한다. 내복은 필수요, 배에 바람이 들어가지 않도록 상의를 하의에 쏙 넣어 야무지게 고정하고, 발목에도 바람이 들새라 양말 속에 내복을 쏙 집어넣는다. 다음은 외출복 차례. 이 때, 목이 휑한 상의라면 페이크 목 티를 입혀서 목도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 마지막으로 외투를 입히고 마스크를 씌우고 귀까지 덮이는 모자를 씌우면 완성! 이 아니라 (···) 둘째에게도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과정은 똑같지만 난이도는 더 올라간다. 첫째는 유튜브 키즈를 틀어주고 휘리릭 입히면 되는데, 둘째에게는 유튜브 키즈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 뛰고 저리 뒹굴며 옷 입기를 거부하는 둘째를 내 무릎에 앉혀서 고정한 다음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러주고 정신을 쏙 빼놓으며 스피디하게 환복해야 한다. 이대로 완성이면 좋으련만… 도대체 왜 아이들은 외출 직전 현관에서 응아를 한단 말인가! ^_ㅠ

하필이면 첫째의 소풍 날처럼 시간 딱 맞춰서 등원 해야 하는 날, 응가 당첨이다. 그런 날은 다시 외투 벗기고 신발 벗기고 바지 벗기고 양말 벗기고 내복 바지까지 겹겹의 옷들을 벗긴 다음 빛의 속도로 엉덩이를 씻겨야 한다. 그리고 얼른 기저귀를 채워야 하는데 꼭 아이들은 엉덩이를 씻고 나면 기저귀를 하기 싫어 도망 다니기 일쑤다. 혼비백산 “늦었다!” 를 외치며 도망간 아이를 붙잡아 기저귀, 내복바지, 양말, 외출바지, 외투, 마스크, 모자, 신발 장착! 이 틈에 나머지 한 놈이 가만 있어주면 좋으련만 잠자코 기다리지 못해 작든 크든 꼭 사고를 치고 있다. 아이고 두야- 겨울에 아들 둘 데리고 외출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집에서부터 카시트를 태우는 단계까지 가면, 절반 이상을 해낸 것이나 다름 없다.

겨울철 무시무시한 껴 입히기 말고도 귀찮은 걸 하나 더 꼽자면, 바로 유모차 방풍커버. 휴대용 유모차는 잘 접혀서 말 그대로 휴대하기 쉬운 게 장점인데 방풍 커버를 부착하면 휴대가 힘들어진다. 일일이 방풍커버를 벗기지는 않지만 접고 펼 때도, 아이를 태우고 뺄 때도 아무래도 번거롭다.

그럼에도 여전히 겨울을 좋아한다. 힘들고 귀찮고 번거롭지만 어려움 끝에 만날 수 있는 행복이 있어서. 커다란 킥보드 장갑에 두 손을 집어넣고 눈만 쏙 빼놓고 무장한 채 열심히 달리는 첫째를 보는 순간. 김 가득 서린 방풍 커버 속에서 살짝 보이는 둘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채 뒤뚱뒤뚱 신나게 뛰어가는 둘째를 보며 “선호야, 조심해야지!” 손을 잡아주며 함께 걸어오는 형제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사소한 순간들 속에 겨울에만 느낄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이 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잘 오지 않는 대구에도 눈이 펑펑 왔다. 생애 최초로 눈을 마주한 두 형제의 눈동자가 휘둥그래지며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이런 게 행복이지.” 하얀 눈 앞에 선 아이들을 보며 출근 걱정은 뒤로 한 채 우리 가족은 겨울의 추억을 한 장 더 쌓았다. 어느 계절에나 사랑이 있지만, 추운 겨울에만 소복소복 쌓이는 따스한 사랑의 장면들이 있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보낼 겨울이 아득하게 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밤. 우리 네 식구의 마음 속에 차곡차곡 쌓일 겨울의 장면들을 기대해본다. 그치만 얘들아… 제발 외출 전에 응가는 좀 자제해주라… ^_^;

(눈에 찍히는 발자국이 마냥 신기한 첫째)

💬 홀몸으로 누리던 겨울의 즐거움들은 누리지 못해 아쉽지만... 😂 아이가 생긴 후 가족이 함께 만들어간 겨울의 추억들도 너무너무 소중해요 🤍 올맘님들은 올해 어떤 겨울의 장면을 쌓으셨나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