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돌을 맞이한 첫째가 부쩍 성장했다. 불과 지난 주 육아에세이 주제가 ‘기저귀 떼기 퀘스트’ 였는데, 단 몇 주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 아이가 스스로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게 된 것이다.

"엄마아- 나 쉬 할래애-"

"으응, 도와줄게"

"아니! 나 혼자 할거야!"

오늘 아침 비몽사몽 잠이 덜 깬 첫째가 엄마의 도움을 한사코 거절한 채 비틀비틀 화장실로 가서 문을 꼭 닫았다. 바지는 제대로 내렸는지, 기저귀를 제대로 내렸는지, 윗옷은 제대로 올려서 잡고 있는지, 소변기에 제대로 딱 붙어 서있는지. 내 눈에 보이질 않으니 더 궁금하고 불안했다.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꾹 참고 아이를 기다렸다. 시간이 걸리는 걸 보니 새벽에 기저귀에 쉬를 한 번 했던 터라 쉬가 금방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쉬가 마렵지 않으면 그냥 나와도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작은 소리가 들렸다.

"쉬~ 쉬~"

쉬하러 갈 때 옆에서 쉬~쉬~ 말해주던 엄마, 아빠, 선생님을 기억하고 혼자서 쉬~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고 있었다.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해내려고 노력할 수 있을 만큼 자랐구나. '노력'이란 걸 아는 작은 사람이 되었구나.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귀엽고 대견한 마음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때로는 엄마보다는 아빠의 말 한 마디가 아이에게 묵직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 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준아, 쉬가 안 나오면 그만하고 나와도 돼. 괜찮아."

"엄마! 나 쉬가 안 나왔어요-"

아빠의 말에 그제야 아이는 살짝 머쓱한 표정을 짓곤 통통 튀어나갔다.

우리 가족은 주일마다 교회를 가는데,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은 본당 한쪽에 따로 마련된 자모실에서 예배를 드린다. 동생이 있어서인지 첫째는 자모실에서 마주치는 어린 아기들을 참 예뻐한다. 하지만 성격 상 좋은 티는 많이 못 내고, 그저 바라보고 웃거나 엄마한테 슬며시 와서 "아기 귀엽다." 말하는 정도? 자모실에서 매 주 만나는 돌을 앞둔 여동생이 있는데, 지난 주부터 벽을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여동생이 넘어질 새라 손을 살짝 잡아준다거나 뒤로 넘어질 까봐 등 쪽에 손을 뻗어 받쳐준다.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기지 못한 네 살의 매너 손이 너무 너무 귀여웠다! 이제 막 세 돌이 지난 아기가 자기보다 더 어린 아기를 아끼는 모습이 참 귀해서 두고두고 이 순간을 아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에너지가 왕성한 둘째가 형아 물건을 가져가고 놀이를 방해해서 속상해서 많이 울고 싸우지만 결국 첫째는 동생을 챙겨준다. 동생이 아직 내리지 못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까봐 "내가 지켜줄 꺼야!" 문 앞에서 대자로 손과 발을 뻗는다든지, "선호 차 온다! 얼른 이리와!" 조금은 거칠지만 그래도 차와 떨어진 쪽으로 동생을 붙잡아 이끈다든지, 어린이집에서 동생을 만나면 손을 잡고 반에 데려다준다든지, 자신의 애착인형을 챙기며 동생에게도 인형을 가져다 준다든지.

갓 세돌이 지난 아이가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걸 보면 한 아이를 키워내는 일이 정말로 고귀한 일임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점점 엄마의 품을 떠나는 것 같아 아쉽기도 하지만, 한 인격체를 우리 부부가 키워내고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도 하다. 부모만이 공감할 수 있는 이 모순.

오늘 밤 잠들기 전, 첫째는 "엄마~ 아빠~ 선준이~ 선호~ 같이 과학관 가고 싶어." 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과학관을 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선준아, 과학관은 어려운 말인데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

돌아온 대답에 우리 부부는 박장대소 했다.

"나 네살이잖아!"

무럭무럭 자라는 네 살 꼬꼬마 덕분에 유쾌한 밤이다. 아이들의 지난 시간이 그립기만 했는데, 앞으로 커 갈 모습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부모로서 많은 사람들을 돌아볼 수 있는 아이로 자랄 수 있게 더 많은 사랑을 부어주고 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겠지. 네 살 꼬꼬마와 함께 오늘도 우리 가족은 한 뼘 자란다.

💬 형님반 갈 때 기저귀는 못 뗐지만,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시도해보고 있어요😊 육아 선배의 조언으로 팬티를 입히기 전 팬티 기저귀를 팬티처럼 입혀봤는데요! 실수를 하더라도 기저귀가 있어서 팬티와 바지가 젖는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으니 좋더라고요! 혹시나 저처럼 ‘기저귀 떼기 퀘스트’ 를 하고 계실 올맘님들을 위해 공유합니다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6개월 1호와 16개월 차 ����이 2호, 11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