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은 바로 엄마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기본적인 생리 욕구마저 뒤로 한 채 오로지 한 생명체만을 위해 살아간다. 응가가 마려워도 아이가 울면 참고 달래고, 배가 고프면 간단히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시리얼에 우유를 붓는다. 말아 먹는 것도 아니고 마시려고 하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마저 내려놓고 아이를 달랜다.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빛의 속도로 씻는 와중에도 아이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다. 샤워기를 몇 번이나 껐다 켜기를 반복하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부랴부랴 안아주기도 한다. 잠이 미친 듯이 쏟아져도 아이가 깨면 나 역시 자동 기상이다. 그렇게 ‘나’ 를 버리고 ‘엄마’ 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얼마 전,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1박 2일 자부여행을 다녀왔다. 9살 딸과 5살 아들을 둔 39살 언니, 7살 아들과 3살 딸을 둔 35살 언니 그리고 4살+3살 연년생 아들을 둔 나. 셋 모두 아이를 낳고 무려 처음으로 하는 자부여행이었다. 사실 우리 셋 만이었다면 이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을텐데, 숙소 예약부터 냅다 저질러 준(?) 고마운 행동대장 언니가 있었다. 사정이 있어 결국 함께하진 못했지만 여행 내내 행동대장 언니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우리의 큰 기쁨이 되었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세 아줌마는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도착해 부산행 SRT에 탑승했다. 가벼운 짐 가방 하나 메고, 숙소와 식당만 정하고 훌쩍 떠나온 우리의 첫 자부여행. 숙소로 향하는 길, 고개를 돌리니 눈 앞에 펼쳐진 광안리 바다에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홀린듯 우리는 바다로 향했다. 횡단보도 신호가 꽤 길어 급으로 눈 앞에 보이는 인생네컷 사진도 찍어보고, 광안리 바다에서 또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삼각대가 없어 외투와 가방을 쌓아 올려 단체 사진도 찍고, 정말 오랜만에 셀카도 찍었다. 늘 우리 핸드폰 카메라의 주인공은 아이들이었는데, 오늘만큼은 우리가 주인공이다! (야호) 날씨는 또 어찌나 맑은지, 푸른 바다에 청량한 하늘까지 더해져 정말이지 완벽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오션뷰에 아줌마 셋은 환호성을 지르며 얼싸안고 방방 뛰었다. 여유롭게 해운대를 거닐며 떡볶이도 먹고, 방어와 밀치회를 포장해서 수다를 떨며 저녁도 먹었다. 아이들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나’ 로서 ‘나’ 에게만 집중한 날. 꼭 수학여행 온 여고생 마냥 밤 늦게 까지 수다를 떨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마주하게 된 나의 어린 시절 상처, 닮고 싶지 않았는데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 자부여행을 갖게 해준 남편에 대한 고마움,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할 지, 그리고 앞으로의 ‘나’ 의 삶까지. 그동안 묵혀둔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나 혼자만 겪은 것도, 나 혼자만 힘들었던 것도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겪고 함께 힘들다는 사실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공감에 멈추지 않고 앞으로의 다짐이나 목표, 방향성을 함께 이야기하며 값진 시간을 보냈다. 육아 에세이를 쓰면서 느낀 수많은 장점을 나열해가며 앞으로 우리 함께 글을 써보자며 침 튀기며 독려하던 나의 모습도 떠오른다. 

엄마라는 옷을 벗어두고 온 오늘의 나는 아이를 재우다 지쳐 잠들지 않았고, 아침 7시부터 일어나 '엄마' 를 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없는 고요한 곳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편안히 잠들고 편안히 기상해, 느긋하게 준비하고 짐정리랄 것도 없는 짐정리를 마치고 또 느긋하게 아점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타임도 가졌다. 맙소사! 느긋함과 여유로움이 이렇게나 많이 등장하다니! 평소 나의 일상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단어들이 아닌가. 하루를 쪼개고 또 쪼개서 부지런히 살아가는 엄마의 일상에는 ‘여유’ 라는 단어가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어서, 몇 년 만에 느낀 이 감정이 참 생경했다.

온전히 ‘나’ 에게 집중할 수 있어 행복했던 1박 2일. 여느 여행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아쉬울 것 없이 1박 2일 완벽하게 행복했다. 소중한 아이와 남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 두 가지 사실에 감사하며 흔쾌히 엄마와 아내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실 어딘가를 여행하기에 1박 2일은 참 짧은 시간이다. 많은 곳에 가진 못했지만, ‘엄마’ 라는 역할을 잠시나마 내려놓을 수 있었던 여행은 그 어느 여행보다 값지고 행복했다. 하루의 자유가 이렇게나 큰 기쁨이 되다니. 그렇게 자부여행을 즐기고 난 후, 집으로 돌아와 마주한 내 가족은 더할 나위 없이 예뻤다. 

💬 율리아의 첫 자부여행... 드디어 이뤄졌습니다.. 😂 (감격) 올맘님들도 자부타임의 추억이 있으신가요? 일상으로부터 잠깐 멀어지는 것 만으로도 정말 큰 환기가 되더라고요 😇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여행이 아니더라도 나를 위한 시간을 잠시나마 가져보셨으면 좋겠어요 💗

객원 에디터  I  Yulia

꾸럭미 넘치는 32개월 1호와 12개월 차 ����이 2호, 10살 호두(개) 어르신을 돌보며 애개육아를 하고 있어요. 육아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랑을 배워가는 중이에요. 엄마가 되기 전엔 아이들에게 주산을 가르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