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되고 싶었다. 마법에 걸려 원 없이 잠 좀 자봤으면. 한 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단잠에 빠졌었는데.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건 깊은 잠을 잘 수 없다는 점이었다. 신생아 시절엔 엄마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가 절대 가볍지만은 않은 탓이었던지 잠결에도 아이가 뒤척이거나 우는 소리엔 저절로 눈이 떠졌다. 잠귀가 밝은 편은 아니었지만, 아이를 한창 돌보아야 하는 백 일 전까진 비몽사몽인 채여도 어김없이 일어나 살뜰히 아이를 챙겼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체력도 달리는데 잠까지 부족해 기운 없이 축축 처지는 일이 잦았고 나 자신에게 밥을 챙겨 먹이는 일 따위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즈음, 양 팔꿈치 쪽 피부에 염증이 자리 잡았다. 평소 같으면 연고나 몇 번 바르고 말았을 상처가 좀처럼 낫질 않고 점점 커지는 게 심상치 않아 병원에까지 가게 되었다.

“잠은 충분히 주무세요?”

의사 선생님은 상처 부위를 찬찬히 살펴보시더니 한동안 통원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말씀하시며 잠은 잘 자는지 물으셨다. 아무래도 상처가 깊어 피부에 구멍이 생길 것 같다고, 살이 차오를 때까지는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잠이라나. 역시 잠이 보약이다. 물론 아이를 돌보는 일도 더없이 중요하지만, 아이를 위해선 엄마인 나부터 건강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한다.

그러나 아이를 돌보며 소위 달콤한 꿀잠을 자는 엄마가 몇이나 될까. 밤낮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 울어 젖히는 신생아 시절을 거쳐 드디어 아이가 통상적인 생체리듬을 따라 밤에는 잠들고 아침에는 일어나게 되는 기적과도 같은 수면 패턴에 접어들었을 때야 겨우 한숨을 돌린다. 그러나 여기서 끝은 아니다. 내 아이는 수면 분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잠드는 순간까지도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이가 남편이 아닌 아이였기에 나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도 깊은 잠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갔다. 물론 처음에 비하여선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새벽만 되면 말똥말똥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잠드는 순간엔 천사가 강림한 듯 얌전하였으나 한밤중이 되면 고이 덮은 이불이 답답한지 세찬 발길질을 해대며 버둥거렸고, 옆에서 자는 나의 얼굴을 가격하거나 내 쪽으로 데구루루 굴러와 자리를 침범했다. 한 번씩 감기라도 찾아오면 점입가경이다. 큰일이라도 난 건가 싶을 정도로 그르렁 그르렁 코를 골고 칭얼칭얼 보채기까지 한다. 걷어차 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내 쪽으로 한참은 이사 온 아이를 다시 원래의 자리로, 칭얼대는 엉덩이를 토닥거리다 보면 어느새 잠은 저만치 달아나 있다. 남편은 너른 침대에서, 아이는 침대 아래 매트리스에서 각자 큰 대 자를 하고 누워 달콤한 꿈나라에서 헤매는 동안 나는 홀로 깨어나 앉아 있었다. 억울했다. 가뜩이나 내 시간도 없이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마음껏 편히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이라니.

에잇, 이왕 달아난 잠이었다. 살포시 일어나 조각조각 흩어진 나의 시간을 야금야금 긁어모아 모자이크처럼 다시 이어 붙였다. 모두가 잠든 조용한 밤, 책을 읽거나 미뤄두었던 영화 혹은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고 희뿌연 새벽은 금방 찾아왔다. 잠은 못 잤어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한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잠을 포기하고 얻은 자유는 진정한 자유랄 수 없었다. 아침이면 지옥이 펼쳐진 듯 괴로웠고 깨어있는 낮은 다 흩어져버린 듯 공허했다. 결국 흐리멍덩한 하루를 보내는 꼴이 됐다.

마침내 밤에 일찍 잠을 자야 되겠다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결론에 이르렀고 양질의 수면을 위해 귀찮고 힘들어도 운동을 하자 결심했다. 거창한 시작은 아니었고 30분에서 1시간 정도 동영상을 켜놓고 집에서 요가를 따라 하거나 집 주변을 산책하며 땀을 흘렸다. 그러자 아이가 옆에서 뒤척거려도 깨는 일 없이 깊은 잠에 빠졌으며 덕분에 개운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른 육아의 퇴근과 밤의 유혹은 한없이 짙었지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른이가 되기로 한 것이다.

이제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부럽지 않다. ‘아이 때문에 잠을 못 잤어.’라는 핑계를 더는 대고 싶지도 않다. 초췌하고 피곤한 일상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면서도 달콤한 잠을 자고 활기가 넘치는 건강하고 씩씩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일찍 잠자리에 든다. 휴대전화와 책은 거실에, 소등은 일찌감치 서두르고 포근한 이부자리에 누운 채 도근 도근 뛰는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잠을 청한다. 아직 잠들고 싶지 않다는 아이와 동영상 플랫폼에 들어가고 싶은 나 자신을 토닥토닥 달래가며 서둘러 눈을 꼭 감은 채 다정한 밤 인사를 건넨다.

Good night, 잘 자. 우리 즐거운 내일을 위해 꿈에서 만나자.

💬 잠을 잘 자고 싶은 마음이 이리도 간절하였던 적이 없습니다. 잠을 못 자면 힘든 일이 너무 많았거든요. 두통에 시달리고 하루 종일 피곤하고, 악순환이었어요. 아이를 잘 키우려면 잠도 잘 자야 하는 엄마. 아이도 푹 자야 쑥쑥 큰다는데 엄마인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객원 에디터  |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