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우리 집의 경우를 들자면, 어림잡아도 첫 번째는 ‘엄마’고, 다음은 ‘같이 놀아요.’ 그리고 그와 쌍벽을 이루는 말이 ‘안아주세요.’다. 넘어지거나 다치면 외관상 피가 철철 흐르는 건 아니지만 밴드라도 하나 붙여줘야 울음을 뚝 그치는 것처럼 아이는 토라지고 속상한 마음이 들면 어김없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안아 달라 조른다. 

그 밖에도 별거 아닌 사소한 일에 안아 달라 엉겨 붙으니, 남편은 마음이 그렇게 여리고 예민해서 이 험난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 것이냐며 쯧쯧 혀를 차고, 아이는 보란 듯 더욱더 어리광이다. 그런 아이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두둔해 보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의 말에 착잡한 생각도 든다. 

안아달라는데 안아주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니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름의 변명을 해 보는데 남편은 고개를 저으며 정도껏 받아줘야지 그게 오냐오냐 키우는 거라고 핀잔이다. 정말 언제까지 마냥 안아 달라 어리광을 부리며 아기 행세를 하려는 걸까. 혼자 커서 더 이러는 건가.

우리 집 여섯 살 난 아이가 안아 달라고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밖에서 걷기 힘들거나 다리가 아프고 피곤할 때, 집에서는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거나 슬프고 속상할 때다. 적절하고 타당한 이유이긴 하다. 부모 입장에서 안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고 정서적으로도 아이와의 애정이 담긴 스킨십은 중요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훈육을 할 상황에서는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안아 달라고 하면서 회피하려는 것으로 보이고,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힘든 현재 상황을 무마하는 것으로 비칠 때가 여러 번 있었다. 자주 안아 주다 보니 유난히 떼를 쓰거나 아기처럼 행동하는 모양으로 보이는 부분이 적잖았다. ‘기-승-전- 안아주세요.’ 모든 일이 이렇게 끝나는 것이다.

“엄마는 화만 내고…”

훈육의 끝에서 안아 주는 게 늦어지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안으며 좋게 마무리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되도록 아이가 옳고 그름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어서, 그래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지 싶어서 여러 번 잔소리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아이는,

“엄마는 했던 얘기만 계속하고, 내 마음도 몰라주고…”

화만 내고 아이의 속마음도 헤아려줄 줄 모르는,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잔소리쟁이 엄마가 된다. 결국 적당히 알아듣도록 타이르고 얼른 안아주고 만다. 이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게 맞는 걸까. 진짜 정답은 무엇일까. 아이를 키울 때마다 도저히 모르겠는 것투성이다.

갓난아기 시절, 버릇 나빠지고 손 탄다고 재울 때 안아 주지 말라던 어른들의 말씀을 여러 번 들었으면서도 나는 기어코 안고 재우기를 고집했었다. 아이를 품에 꼭 안으면 세상 무서울 거 하나 없고 힘도 들지 않았던, 그저 아이의 자는 얼굴만 봐도 행복하던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도 자는 아이 얼굴이 가장 예쁘지만. 그때는 첫 아이라는 기쁨과 행복에 겨워서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고통스럽고 손목이 뻐근히 아파도 아기띠를 두른 채 둥개둥개 리듬까지 타며 안아 주었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아이의 머리카락에 코와 입술을 갖다 대고 두 손으로 폭 껴안은 채 아이를 재우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얼마쯤이나 지났을까. 차츰차츰 아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재우게 되는 시기가 찾아왔고 아이도 잠을 청할 때마다 안아 달라 떼를 쓰지 않고 스스로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배를 탄 마냥 안고 흔들지 않아도 조심스레 가슴을 토닥여주면 새근새근 잘도 잤다. 아, 잠시뿐이었구나. 안고 재우는 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 빛 같은 시간이었다.

한껏 안고 살을 비비는 지금이 찰나라면… 안아 달라는 말에 꼭 맞는 답을 찾으려 애쓰다가, 버릇이 나빠지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다가 정작 알아차려야 할 소중한 찰나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닐까.

아이는 지금도 여전히 안아 달라 조르는 일이 많다. 타당한 이유 따윈 없이 목욕하고 나오면서도, 안방에서 거실 소파로 향하거나 잠을 청할 때도, 다시 엄마의 배 속으로 들어가 아기가 되고 싶다며 장난스럽게 굴면서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두 팔을 활짝 펼친 채 품으로 파고든다. 그럼 나도 아기가 된 것처럼 아이의 품에 안긴다. 그러면 아이는 제법 그럴듯하게 한동안 엄마인 나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안아주는 것이다. 갓난아기 시절, 내가 아이를 재우며 등을 도닥이던 것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안고 안기며 한껏 애정을 표현한다. 

먼 훗날, 원 없이 안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이 그리워져서 그때 한 번만 더 꼭 안아줄 걸 싶은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인형처럼 아이를 품에 꼭 안을 수 있는 때는 바로 지금뿐이지 않을까.

💬 초등학생 저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육아 선배님을 만났어요. 초등학생만 되어도 엄마가 아이한테 도리어 안아달라고 매달린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엄마한테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때가 그립다고요. 아이를 실컷 안아 줄 타이밍, 바로 지금 인가 봅니다.

객원 에디터  |  오은미

공룡을 사랑하는 5살 남자와 탱크를 사랑하는 37살 남자 사이에서 늘 고군분투하는 35살 여자이자 엄마예요. 육아를 시작하며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참 어렵고 힘든 순간들이 많지만 그 속에서 감사와 행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